만록에서 ‘만(漫)’자는 멋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즐거운 모양, 두루 쓰다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만록은 멋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즐기기 위해서, 두루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명칭 또한 일정하지 않아 필자가 붙이고 싶은 대로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만록의 명칭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만기(漫記)·만지(漫志)·만담(漫談)·만필(漫筆)·잡존(雜存)·잡록(雜錄)·잡찬(雜纂)·잡설(雜說)·패림(稗林)·패설(稗說)·총록(叢錄)·총담(叢談)·총지(叢志)·총화(叢話)·야록(野錄)·야문(野聞)·계담(季譚)·췌필(贅筆)·췌언(贅言)·설림(說林)·한화(閒話)·극담(劇談)·담적기(談寂記)·파한(破閑)·보한(補閑)·쇄어(瑣語)·쇄담(瑣談)·수필(隨筆)·수록(隨錄)·가필(暇筆)·여화(餘話)·척언(摭言)·유설(類說)·소설(小說)·연담(軟談)·기문(奇聞) 등이 있다.
만록은 공적인 목적을 배제하고 사적인 목적으로 비망적(備忘的)인 일, 회고적인 일, 심심파적의 이야깃거리 등을 수록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므로 한문학의 전통양식에 만록은 들어 있지 않다. 이른바 무형식의 형식이 만록의 속성이다. 일종의 잡기(雜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어 서양의 수필과는 다르다. 시화(詩話)·시평(詩評)·서품(書品)·화품(畫品)·제도(制度)·풍속(風俗)·지리(地理)·항담가어(巷談佳語)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만록의 등장시기는 송대(宋代) 만록의 영향을 받은 고려 중엽 이후이다.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이어서 고려 말기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을 거쳐 조선조에서 만록은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만록 중에서 중요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남효온(南孝溫)의 『추강냉화(秋江冷話)』, 김정국(金正國)의 『사재척언(思齋摭言)』, 이륙(李陸)의 『청파극담(靑坡劇談)』, 이기(李曁)의 『송와잡설(松窩雜說)』,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 조신(曺伸)의 『소문쇄록(謏聞瑣錄)』, 권응인(權應仁)의 『송계만록(松溪漫錄)』, 김시양(金時讓)의 『부계기문(涪溪奇聞)』이 있다.
그리고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五山說林)』, 신흠(申欽)의 『청창연담(晴窓軟談)』, 윤근수(尹根壽)의 『월정만록(月汀漫錄)』,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 김득신(金得臣)의 『종남총지(終南叢志)』, 임방(林埅)의 『수촌만록(水村漫錄)』, 임경(任璟)의 『현호쇄설(玄湖瑣說)』,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등이 있다.
만록은 조선 후기에는 분량이 방대해 졌다. 그리고 내용도 시화(詩話) 또는 야사(野史), 혹은 잡다한 사실의 변증(辨證)으로 전문화되었다. 한편으로는 같은 계통의 역대 저술을 한 곳에 모으는 저술형태가 나타났다.
홍만종의 『시화총림(詩話叢林)』과 이규경(李圭景)의 『시가점등(詩家點燈)』, 임렴(任廉)의 『양파담원(暘葩談苑)』,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찬자 미상의 『대동야승(大東野乘)』·『광사(廣史)』·『패림(稗林)』 등이 그러한 예이다.
만록은 일정한 형식과 내용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잡기류(雜記類)이다. 그렇지만 필자들이 대개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층이기 때문에 문인들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였다. 때로는 시대상황을 본격적으로 따져 고증한 예도 있다.
시(詩)·서(書)·화(畫)·다(茶)·기(棋)·인물·자연·풍습·문물·제도 등이 수록 내용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만록에는 필자들의 문명관(文明觀), 당대의 문화에 대한 비평안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만록은 정통 사서나 문집에 미처 수록될 수 없는 시대 상황의 배경 또는 감추어진 이야기를 부담없이 기록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문학작품에 대한 실제 비평도 만록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하층민의 동향과 그들 문화에 대한 관심도 만록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정사(正史)나 문집을 가장 중요한 자료로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지니는 자료의 한계성을 만록에서 보충하고 있다. 따라서 만록의 독자적인 의의 또한 적극적으로 찾아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