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만록』은 조선 전기 서얼 출신 문인 권응인이 지은 시화집이자 일화집이다. 고금 명문장들의 시 작품 및 그와 관련한 시화를 수록하고 있다. 상하 2권으로 상권에는 주로 시 작품 및 시화, 하권에는 여러 가지 일화 및 소화가 수록되어 있다. 18세기 이후에 간행된 다수의 야사 총서에 수록되어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필기집들이 주로 단순 골계담 위주로 구성되어 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시화 및 시 비평을 중심으로 구성됨으로써 후대에 시화 중심의 필기집이 창작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권응인(權應仁)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원(士元), 호는 송계(松溪)로, 수암(水庵) 권희맹(權希孟)의 서자(庶子)이다.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 심수경(沈守慶), 신잠(申潛), 이해수(李海壽) 외에 수많은 문인(文人)과 활발하게 시를 수창(酬唱)하였다. 한리학관(漢吏學官)이라는 말직(末職)이었으나 문장력으로 인정받아 일본과 중국 사신을 영접(迎接)하는 일에 여러 번 참여하였고 중국에는 7차례, 일본에는 3차례 왕래(往來)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1542년에 형 권응창(權應昌)을 따라 중국에 가서 절강의 인사(人士)들과 교유(交遊)하고 무령현(撫寧縣)의 벽에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황(李滉)의 제자로 시문(詩文)에 능하여 당시에 그를 상대할 이가 드물 정도였으나, 출신이 서자였던 관계로 변변한 벼슬에도 오르지 못한 채 불우(不遇)한 생애를 마쳤다.
상 · 하 2권. 필사본. 18세기 야사(野史) 총서(叢書)에 수록되기 시작하여 1730년대 편찬된 『청구패설(靑丘稗說)』, 필사본(筆寫本) 『대동야승(大東野乘)』, 19세기 김려(金鑢)의 『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 심노숭(沈魯崇)의 『대동패림(大東稗林)』, 『패림(稗林)』 등에 수록되었고,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別集) 야사목(野史目)에도 수록되어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것은 『대동야승』 본으로, 『대동야승』 권56에 수록되어 있다. 『한고관외사』 본은 가장 많은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으며 편자(編者)의 주석(註釋)을 통해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다. 홍만종(洪萬宗)이 편찬한 『시화총림(詩話叢林)』 하권에 수록된 것은 분권(分卷)되어 있지 않으며, 2권본의 상권에 해당하는 부분이 초록(抄錄)되어 있다. 그 밖에 『패림』, 『야승(野乘)』, 『광사(廣史)』 등의 총서에도 수록되어 있으나, 이 중 『광사』 본은 동경 대지진 때 소실되었다. 이외 19세기 간행(刊行)된 저자의 문집(文集) 『송계집(松溪集)』에도 일부 포함되었는데, 다른 본과 달리 동일 인물이나 주제에 관한 기사를 모으는 등 정연된 모습을 보인다.
확실한 저작 연대는 알려지지 않으나, 이 책 하권의 기록 가운데 “중종(中宗) 이후 재상으로 큰 복을 누려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재상 송흠(宋欽)은 나이 90여 세에 벼슬이 1품에 이르고 …… 재상 홍섬(洪暹)은 82세에 벼슬이 삼공(三公)에 이르고, 재상 원혼(元混)은 89세에 벼슬이 1품에 이르러 아직도 병 없이 지낸다. (원 재상(元宰相)은 나이 92세에 죽었다.)”라는 구절(句節)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원혼이 89세이면 1585년이니 이때 이 책을 지었을 것이며, 원 재상이 92세에 죽었다는 주석을 저자 자신이 한 것이라면 1588년 이후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대하여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遣閑雜錄)』 자발(自跋)에는 “고금(古今) 문인(文人)들이 저술한 잡기(雜記)가 그중에는 간행하지 않은 것도 또한 많다. 오래되면 모두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여기 적어 참고(參考)에 이바지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상 · 하 2권으로 구성된다. 상권의 77화 중 3화의 일화(逸話)를 제외하고 모두 고금 명문장(名文章)들의 시화(詩話)이다. 하권은 총 63화로 상권에 비해 내용이 다양한데 그중 변증문(辨證文)과 일화, 소화(笑話)가 다수 포함되었다. 『대동야승』 본과 『시화총림』 본의 처음에 실려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은 문장으로 이름이 나, 남곤(南袞)이 ‘ 박은(朴誾)의 시와 김일손의 문장이 제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세상에 전하는 김일손의 문집에는 시가 매우 드물다는 점을 지적하며, 삼가현(三嘉縣)의 관수루(觀水樓)에 전하는 율시(律詩) 한 편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 함자예(咸子乂)의 「촉석루시(矗石樓詩)」, 어떤 부인의 「부여회고시(扶餘懷古詩)」 등이 차례로 소개되고 있다.
『송계만록』의 작자인 권응인은 문장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말직(末職)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계만록』에는 현실을 비관하거나 비판한 내용보다, 시문(詩文)과 관련한 일화와 비평문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또 이 책은 16세기 초 골계(滑稽) 잡록(雜錄)이 유행했던 상황에서 단순한 소화가 아닌 시화가 중심이 된 필기집으로, 전대의 잡록류를 계승하면서 16세기 후반의 필기를 함께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