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9년(세조 5) 출생하였다. 고조할아버지 송현덕(宋玄德)은 판사재 감사(判司宰監事), 증조할아버지 송귀(宋龜)는 증병조 참판(贈兵曹參判), 할아버지 송처은(宋處殷)은 유곡찰방(幽谷察訪)을 지냈다가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아버지 송가원(宋可元)은 문소전 참봉(文昭殿參奉)을 지냈다가 우찬성(右贊成)으로 추증되었다. 어머니 하동정씨(河東鄭氏)는 생원 정필주(鄭弼周)의 딸이다.
1480년(성종 11) 사마시에 입격하고, 1492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연산군 대 폭정으로 나라가 혼란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을 양성하고 경전을 강론하는 일에 힘썼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따르면,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홍문관 정자(正字) · 박사(博士) · 수찬(修撰) ·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 헌납(獻納) · 병조정랑 · 전라도사 · 사헌부 지평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다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1506년(중종 1) 지평에 임명되었던 기록부터 확인된다. 어머니의의 나이가 많아지게 되자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외직을 신청해 보성군수(寶城郡守) · 옥천군수(沃川郡守) · 순천부사(順天府使) · 여산군수(礪山郡守)로 근무하였다.
1534년 77세의 나이에 전라감사(全羅監司)를 제수받았지만 어머니의 연세가 99세나 되어 봉양에 힘쓰고자 사직 상소를 올려 중종의 허락을 받았다. 이후 어머니에 대한 봉양에 힘썼다. 어머니가 101세의 나이로 돌아가시자 본인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상례와 관련된 모든 절차에 정성을 다해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1538년 한성부좌윤, 이후 이조판서와 병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나이를 이유로 사직하였다. 1543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1547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