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권. 필사본. 제4권과 제7권이 결본(缺本)으로 되어 있다.
수록 인물수는 결본으로 빠진 수를 빼고도 2,065인이다. 이 수치는 정조 때 편찬된 『인물고(人物考)』의 1,817인 보다 248인이나 많다.
이 책은 『인물고』 찬집을 위해 수집된 자료를 가지고 만들었을 뿐 아니라, 편차(編次)의 내용과 그 배열이 『인물고』와 거의 같고, 수록 인물의 상당수가 중복되어 있다. 그러나 『인물고』가 인물의 성명 · 자 · 호 · 가계 · 특장(特長) · 사업 등을 서술체로 설명한 것에 비해, 이 책은 각 인물의 묘지명 · 묘갈명 · 묘표 · 비명 · 행장 · 유사 · 시장(諡狀) · 문집서 · 정려비 중에서 가장 잘된 것을 하나씩 골라 그대로 싣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한편, 이 책은 이후에 출간된 정조 때의 『동국명현사적(東國名賢事跡)』 · 『해동신감(海東臣鑑)』, 고종 때의 『국조문헌』, 순종 때의 『국조인물지』 등의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37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편찬한 『조선인명사서(朝鮮人名辭書)』에는 『인물고』와 함께 이 책이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
주요 항목과 수록 인물수는 다음과 같다. 원고(原考)에는 상신(相臣) 54인, 국척(國戚) 74인, 유학(儒學) 36인, 경재(卿宰) 286인, 명류(名流) 318인, 문관(文官) 91인, 무변(武弁) 40인, 휴일(休逸) 99인, 음사(蔭仕) 153인, 사자(士子) 113인이 수록되었다.
이어 장광선대시입절인(莊光禪代時立節人) 17인, 연산시이화인(燕山時罹禍人) 63인, 기묘당적인(己卯黨籍人) 54인, 을사이후이화인(乙巳以後罹禍人) 39인, 우율종유친자인(牛栗從遊親炙人) 149인, 왜란시입절인(倭亂時立節人) 72인, 왜란시정토인(倭亂時征討人) 28인, 광해시입절인(光海時立節人) 14인, 광해시이화인(光海時罹禍人) 48인, 계해거의인(癸亥擧義人) 38인, 노난시입절정토인(虜難時立節征討人) 69인, 갑인이후입절이화인(甲寅以後立節罹禍人) 40인의 22항목 1,895인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속고(續考)에는 상신 5인, 국척 5인, 유학 2인, 경재 32인, 명류 15인, 문관 7인, 휴일 26인, 음사 34인, 왜토(倭討) 6인, 윤기(綸紀) 1인, 거의(擧義) 5인, 갑자순절노난(甲子殉節虜難) 10인, 장광(莊光) 3인, 연산시화 3인, 기묘당적 4인, 을사이화 6인, 왜란입절 6인 등의 17항목 170인, 도합 39항목 2,065인의 인물을 싣고 있다.
규장각도서에 20세기 초엽에 필사한 것으로 생각되는 필사본이 있다. 1978년에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3책으로 영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