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년(세종 2)에 집현전이 설립될 때 집현전 내에 다양한 직제들을 마련해 업무를 담당하게 하면서 설치되었다.
정원은 모두 2명인데, 이는 홍문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현전 설치 당시 집현전의 모든 관원들이 경연관(經筵官) · 사관(史官) · 지제교(知製敎)를 겸함에 따라, 경연 검토관 · 춘추관 기사관 · 지제교의 역할을 병행하였다. 즉, 경연에 참여하여 경전과 사서를 강의함은 물론, 사관으로서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왕명을 제작하는 역할도 병행하였다.
또한 시종신으로서 왕명을 전달하기도 하였으며, 서적 편찬과 제도 정비 등에서 국왕의 고문에 응대하는 등 다양한 업무에서 왕을 보필하였다. 성종 대 홍문관으로 복설된 뒤에는 언론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됨에 따라 다양한 사안에서 홍문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 활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시종신으로서의 역할이 강화되어 경차관으로 차정되거나, 수령들의 부정 적발을 위해 지방에 파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