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헌납은 조선시대, 국왕에 대한 간쟁을 맡은 간관 계열의 직제이다. 고려시대 간쟁을 담당하던 중서문하성의 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직제 변경이 여러 차례 이루어지는 가운데 1401년(태종 1)에 문하부가 혁파되고 사간원이 독립기구로 개편될 때 좌・우헌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우헌납과 함께 혁파되었다가 1463년(세조 9)에 헌납 1인이 재설치되면서 우헌납의 직명이 사라지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사간원에 정5품의 헌납1좌로 정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독립적인 간쟁 기관이 설치되지 않고 중서문하성의 낭사(郎舍)가 간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원간섭기 이후로는 중서문하성의 명칭과 내부 직제들이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1308년(충렬왕 34), 정6품관인 좌사간을 정5품의 좌헌납으로 변경하였으며,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좌사간으로 개칭되었다가 1362년(공민왕 11)에 좌헌납, 1369년(공민왕 18)에 좌사간, 1372년(공민왕 21)에 좌헌납으로 변경되었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1392년(태조 1)에 좌헌납을 정5품의 좌보궐(左補闕)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401년(태종 1)에는 문하부 혁파와 함께 간쟁 전문기관인 사간원을 별도로 설립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좌보궐과 우보궐을 좌우헌납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좌헌납은 문종 대에 좌보궐로 개칭되면서 폐지되었다.
1460년(세조 6), 관서 정비 때 업무가 겹치는 관직들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좌우헌납 2인을 혁파하였다가 1463년(세조 9)에 헌납의 명칭으로 1인만을 재설치하였고, 이때의 명칭과 품계가 『경국대전』에 반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