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이다. 김려 편찬한 『광사(廣史)』에 6권 완본이 들어 있었는데 오래 전에 일본에서 소실되었다. 『대동야승(大東野乘)』에는 4권까지, 『시화총림(詩話叢林)』에는 시화(詩話) 부분만 발췌, 수록되었다. 『양파담원(暘葩談苑)』에는 총 46화가 실려 있는데 이 중 8화는 『대동야승』본에 없는 내용이다. 김려의 『한고관외사(寒皐館外史)』본에는 이 내용이 모두 실려 있어 완본이라고 할 수 있다. 권 1은 80화, 권 2는 92화, 권 3은 79화, 권 4는 82화, 권 5는 75화, 권 6은 64화의 총 472화로, 『대동야승』본의 247화보다 226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패관잡기』 권 6 제462화에 1573년에 주청사(奏請使)를 따라 간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최소한 1573년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적 효용에 접근하는 비망적(備忘的) 특성이 강하며 사회, 문화, 역사, 문학 등의 범위를 망라하고 있다.
현존하는 『패관잡기』는 『대동야승』에 수록된 4권본과 『시화총림』 권 2에 초록된 시화 부분, 『한고관외사』의 6권본으로, 『대동야승』은 1909∼1911년에 경성고서간행회(京城古書刊行會)에서 13책으로 인행하였고, 1968년 경희출판사에서 4책으로 간행하였다. 『시화총림』은 4권 4책의 필사본을 1973년 아세아문화사에서 복사, 간행하였고 『한고관외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02년~2005년에 거쳐 5권으로 영인, 간행하였다.
주원장(朱元璋)의 홍무(洪武) 원년부터 시작하여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명나라에 오고 간 사절들과 요동(遼東) · 일본 · 대마도 · 유구(琉球) 등지에 관련된 유사(遺事) · 풍속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사환(仕宦) · 일사(逸士) · 시인 · 묵객들의 언행과 재인 · 기예(技藝) · 축첩(蓄妾) · 동요(童謠) 등에 관한 사실들을 보고 들은 그대로 기술하였다.
일례로 김시습(金時習)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다. “김시습은 일찍이 속세를 떠나 중이 되었다. 부잣집 늙은이가 백단자(白段子)로 가사를 지어 그에게 보시하니, 그것을 입고 서울에 들어가 진창물 속에 몸을 수십 번 구른 끝에 벗어서 던져 버렸다. 후에 세조(世祖)가 원각사(圓覺寺)에 행차하여 수륙재(水陸齋)를 차리는데 김시습이 신승(神僧)으로 부름을 받았다. 누덕누덕 기운 납의를 입고, 청어(靑魚) 한 마리를 품안에 매달았다. 왕께 나아가 뵐 때 청어 품은 것이 드러나니 세조가 미친 중이라 여겨 물리쳤다.”(『패관잡기』 권 4)
이외 고려시대부터 당대까지 문인들의 시화가 다수를 이루며 일본 사신과 얽힌 시화, 자신의 직계 선조 및 조선 초기 문인들의 작품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또한 국내외 정치와 중국과 일본, 유구국(琉球國) 등 외교와 관련된 내용과 의약과 의술에 관련된 내용, 지리와 풍속, 회화, 속담, 과거 제도, 복식, 서적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김려는 「제패관잡기권후(題稗官雜記卷後)」에 “내 어릴 때부터 선배들이 매번 우리나라 야사를 논하는 데서 틀림없이 ‘어숙권이 지은 『패관잡기』가 사료의 창고’일 것이라고 여겼다.”라고 하면서, 『패관잡기』 전편을 보기를 고대하다가 친구 이치수(李穉粹)에게서 완질을 얻어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만큼 조선 전기 패관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조선 전기의 사실(史實)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