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락정기 ()

고전산문
작품
조선 후기에 이이순(李頤淳)이 지은 고전소설.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이이순(李頤淳)이 지은 고전소설.
내용

2권 2책. 한문필사본. 쟁총형 가정소설에 영웅소설의 유형을 결합한 작품이다.

원나라 말엽 유영(柳英)이라는 진사는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가, 문학사와 두 선녀가 인간세계로 추방되는 것을 본다. 명나라 가정 초년에 서필(徐弼)이라는 각로는 천상의 문학사가 적강하여 품에 드는 꿈을 꾸고 아들 몽상(夢祥)을 얻는다. 예부상서를 지낸 권전(權銓)은 선녀가 품에 드는 꿈을 꾸고 딸 채운(彩雲)을 얻는다.

권공은 서공에게 청혼하여 약혼을 하여둔다. 그 뒤 권공과 서공이 병을 얻어 죽자, 승상 엄숭이 아들을 두고 권소저의 작은아버지에게 청혼한다. 작은아버지가 청혼을 거절하자 엄승상은 권시랑을 하옥시킨다. 권소저는 거짓으로 엄부에게 출가하겠다고 하여 작은아버지를 석방시킨 후, 남복을 하여 집을 떠난다.

권소저는 우연히 정부마의 아들 정학사를 만나게 되어 권도(權道)로 그의 누이 정소저와 혼인한다. 권소저는 정소저에게 남복한 이유를 설명하고 후일 서공자를 만나거든 같이 섬기자고 한다.

정학사는 서공자를 만나 권소저의 소식을 전한다. 서공자는 과거를 보러 가는 도중에 위소저를 만나 후일을 기약한다. 과거에서 장원한 서공자는 한림학사를 제수받고 권소저와 정소저를 동시에 취한 뒤 다시 위소저를 맞아들인다.

위씨는 두 부인을 없애기 위하여 문객 조평을 움직여 서학사를 유배가게 한다. 위씨는 권씨가 외간남자와 간통한 것처럼 꾸며 옥에 갇히게 한다. 임신중이던 권씨는 여승 혜원의 도움으로 산사로 피신하여 아들을 낳는다.

한편, 선계의 유영은 서학사를 초청하여 병법을 전수한다. 홍무초에 철목족이 중원을 침공한다. 우림장군 홍의보가 천자에게 서학사를 천거하여, 서학사는 북정대원수가 되어 적을 격파한다. 여승 혜원이 서원수에게 가서 권부인의 안부를 전하니, 서원수는 권부인과 아들 복성(福星)을 만난다.

위씨와 조평은 서원수의 회군을 듣고 서부의 보물을 훔쳐가지고 도망한다. 위씨는 조평이 시비 난향과 놀아나고 있음을 질투하여 난향을 내친다.

난향이 지난날의 죄를 뉘우치고 서원수에게 위씨가 있는 곳을 알려주니, 서원수는 이들을 잡아들인다. 천자는 서원수를 진국공으로 삼는다. 진공이 위씨를 처형하고 가족이 모두 모여 부귀영화를 누린다.

의의와 평가

작자의 자서(自序)를 보면,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와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바가 있다고 하고, 가정의 부녀자들을 깨우치고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이 작품을 썼음을 밝히고 있다.

위씨가 간부 조평과 놀아나는 점은 「사씨남정기」에서 교씨가 동청과 사통(私通)하고 사부인을 몰아내는 장면, 「창선감의록」에서 화춘의 첩 조씨가 장평과 모의하여 임부인을 내치고 화진의 두 부인을 모해하고 화가(花家)를 파산시키려는 이야기와 같은 점이 많다.

서몽상의 군담은 「창선감의록」에서의 화진의 전쟁담과 유사하며, 남복으로 도주하던 권소저가 정소저와 혼인하였다가 서몽상을 함께 섬기는 이야기는 「홍백화전(紅白花傳)」에서 순직소가 설유란과 권도로 혼인하였다가 계일지의 양부인이 되는 이야기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창선감의록」에도 남복으로 도망가던 진채경이 백소저와 정혼하였다가 윤공자를 함께 섬기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같은 점으로 미루어볼 때, 이 작품은 「사씨남정기」·「홍백화전」·「창선감의록」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규장각과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舊 金東旭 소장본)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한국고전소설연구』(김기동, 교학사, 1981)
「일락정기작자소고」(신동일, 『국어국문학』99, 1988)
「홍백화전소고」(신동일, 『국어국문학전국대회발표요지』, 1983)
「일락정기연구」(신동익, 『관악어문연구』8,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3)
「이조소설의 작자와 독자에 대하여」(금동욱, 『장암지헌영선생 화갑기념논총』,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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