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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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신 이인로가 시평 · 서필담(書筆談) · 수필 · 시화 등 83편을 수록한 시화집. 시화 · 잡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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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파한집』은 고려시대 문신 이인로가 시평, 서필담, 수필, 시화 등 83편을 수록한 시화집이다. 이인로의 사후 40년 뒤인 1260년(원종 1) 3월에 안렴사 대원왕공의 후원으로 초간되었다. 1659년(효종 10)에 엄정구가 경주부윤 재임 중에 조속(趙涑)의 가장비본을 가지고 각판한 중간본이 남아 있다. 상권은 시평 12조, 서필담 1조, 수필 7조, 시화 1조, 문담 2조, 기행문 1조가 수록되어 있다. 중권에는 시평 13조, 수필 13조가 실려있고 하권에는 시평 15조, 수필 18조 등이 실려있다. 『파한집』은 우리나라 시화집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목차
정의
고려시대 문신 이인로가 시평 · 서필담(書筆談) · 수필 · 시화 등 83편을 수록한 시화집. 시화 · 잡록집.
내용

3권 1책. 목판본. 이 책은 저자가 69세로 사망하기 직전에 지은 것이다. 이인로의 사후 40년 뒤인 1260년(원종 1) 3월에 아들 세황(世黃)이 수집하고 안렴사(按廉使) 대원왕공(大原王公)의 후원으로 초간되었다. 현재 당시의 초간본은 전하지 않는다. 1659년(효종 10)에 엄정구(嚴鼎耉)경주부윤 재임 중에 조속(趙涑)의 가장비본(家藏秘本)을 가지고 각판(刻板)한 중간본이 남아 있다.

『파한집』의 권 상은 시평(詩評) 12조(條), 서필담(書筆談) 1조, 수필 7조, 시화(詩話) 1조, 문담(文談) 2조, 기행문 1조, 권 중은 시평 13조, 수필 13조, 권하는 시평 15조, 수필 18조 등의 도합 83조가 수록되어 있다.

『파한집』의 ‘파한(破閑)’이란 글자 그대로 한가함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산림에 은둔하며 온전한 한가로움을 얻음은 장기 · 바둑 두는 일보다 낫기에 ‘파한’이라고 이름 붙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파한집』은 단순한 심심 파적을 위한 저술이 아니다. 『파한집』의 내용은 시화 · 일화 · 기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파한집』의 태반은 시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파한집』은 우리 나라 시화집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우리 고전시학(古典詩學)의 귀중한 연구자료이다.

이인로는 우리 나라 명유(名儒)들의 시작품들이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한 채로 인멸되어 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시를 삶의 정수로서 사랑하고 음미하면서 많은 시화를 『파한집』에 수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다른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편들이 상당수 실려 있다. 그리고 시학의 근본 문제에서 작시법(作詩法) 혹은 구체적인 작품평에 이르기까지 두루 제시되어 있다. 동시에 수필적인 잡록도 여러 항목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파한집』은 역사자료로써 이용가치가 있다.

이인로가 『파한집』에서 피력한 그의 문학사상은 다음과 같다. ① 시란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어떤 상황에서 창작되며, 또 어떠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그는 빈부와 귀천으로 높낮이를 정할 수 없는 것은 문장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문학 행위의 주체에 대하여 신분적 차등과 구속을 배제한다. 그는 더 나아가서 문장의 가치를 부귀의 그 것보다 더 높이 두었다. 이인로는 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생산해 낸 문학의 내용과 풍격은 자체적인 구속성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는 마음에서 근원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인로는 신준(神駿)임춘(林椿)의 작품 성격이 그 표현상에 한스러움과 구슬픔이 깔려 있음은 그들의 현실상황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 것이다.

② 이인로는 시에 담겨야 할 내용은 충의지절(忠義之節)에 근거하여 형상화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두보(杜甫)의 옥질(玉質)이 잘 혼합된 경지를 예로 들고 있다. ③ 이인로는 작시론(作詩論)에서는 어의(語義)가 제대로 갖추어진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것은 문학이 언어의 구조물 내지는 예술이라는 투철한 인식을 한 것이다. 따라서 어묘(語妙)를 우선적으로 중시하여 다듬은 흔적이 없는 상태인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경지를 권장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의경(意境)에서 의묘(意妙)를 추구하였다. 이인로를 이러한 면에서 보면 종래의 단순한 용사론자(用事論者)로만 파악하여온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 밖에 특기할 만한 사항은 왕명과 기년문자(紀年文字)가 27조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것은 그의 사학에 대한 안목을 알아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파한집』은 1911년에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활자본으로 출판을 하였다. 1964년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용재총화(慵齋叢話)』와 합본하고 역주하여 간행하였다. 1973년에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는 다른 몇 가지 문집과 함께 『고려명현집(高麗名賢集)』 2권으로 영인하고 간행하였다. 규장각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파한집해제(破閑集解題)」(권오돈, 『한국의 명저』, 현암사, 1970)
『고려조한문학연구』(서수생, 형설출판사, 1971)
「이인로(李仁老)의 현실관과 문학사상」(김진영, 『관악어문연구』 4,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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