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한집』은 고려 후기 문신 최자가 이인로의 『파한집』을 보충하여 1254년에 간행한 시화집이다. 최자는 자서에서 당시 실권자 최이가 이인로의 『파한집』이 너무 소략하니 보완을 요청하였다고 밝혔다. 권상에는 고려 태조의 문장 및 역대의 명신들의 언행과 누정, 역원을 소재로 한 시 등 52화(話)가 수록되어 있고, 권중에는 이인로, 이규보 등의 일화와 시문평 등 46화가 수록되어 있다. 권하에는 시품 21품과 승려, 기생의 작품 등 49화가 수록되어 있다. 최자는 나름의 비평 기준과 비평관에 입각하여 비평을 전개하여 고려 시대의 비평문학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보한집』은 본래 이인로(李仁老)가 엮은 『파한집』을 보충하는 입장에서 저술한 것이다. 그래서 ‘속파한집’이라고도 하였다. 최자는 자서(自序)에서 이인로가 고금의 여러 명현의 좋은 문장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 『파한집』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실권자인 최이(崔怡)가 『파한집』이 너무 소략하니 보완하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서 산일된 나머지의 그들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고 편집경위를 밝히고 있다. 최이의 속보(續補)지시는 당시의 문인 · 문학 우대책의 일환에서 나온 것이다.
『보한집』은 양에서 『파한집』의 배가 되고 내용도 더 다채롭다. 권상에는 고려 태조의 문장을 비롯한 역대의 명신들의 언행과 누정(樓亭) · 역원(驛院)을 소재로 한 시 등 52화(話), 권중에는 이인로 · 이규보 등의 선배 문인들의 일화와 시문평 46화, 권 하에는 21품(品)에 걸친 모범적 시구의 예시와 함께 자신의 시문론과 승려 · 기생의 작품 등 49화가 수록되어 있다.
『보한집』은 다른 어느 시화문헌에서보다도 문학론이 풍요하다. 당시 고려의 한시단(漢詩壇)은 소식(蘇軾)을 배우려는 기풍이 지배적이다. 작시법에 있어서는 어묘(語妙)를 중시한 이인로 계열과 신의(新意)를 보다 중시한 이규보(李奎報)계열의 주장이 있었다.
『보한집』에서는 그 같은 대립적 경향 중에서 사어(辭語) · 성률(聲律)의 표현미에 치중한 이인로 쪽보다는 기골(氣骨)과 의경(意境)을 더욱 중시한 이규보 쪽의 입장을 지지, 옹호하고 그의 이론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시문은 기(氣)를 주로 삼는데 기는 성(性)에서 나오고 의(意)는 기에 의지하며, 말은 정(情)에서 나오니 정이 곧 의이다’라고 하여 이규보의 기론을 발전시켜 의(意)를 정(情)으로 풀이하였다.
『보한집』의 문장은 도(道)의 입문이므로 도에 어긋나는 말은 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도문일치론(道文一致論)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글의 기(氣)를 살리고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다소 도에 어긋나는 험하고 이상한 표현도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문장을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였다. 문장은 기(氣) · 골(骨) · 의(意) · 사(辭) · 체(體) 등의 여러 가지 요소를 구비하였을 때에 훌륭한 문장이 되며 그렇지 못하면 문장의 병폐가 된다고 하였다.
『보한집』은 시의 품평 기준을 상(上) · 차(次) · 병(病) 3등급으로 설정하였다. 상에는 신기(新奇 : 새롭고 기이함.)를 비롯한 10품, 하에는 생졸(生拙 : 설고 서○.) 등 8품으로 34품을 예시하였다. 이와 같이 품격의 우열을 셋으로 구분하여 기상(氣象)이 잘 나타난 작품을 상품으로 평하고, 사어와 성률의 수사기교가 우수한 시를 버금으로 하고, 그 어느 쪽도 갖추지 못하여 거친 것을 병들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제시는 당나라 종영(鍾嶸)의 시 3품이나 사공도(司空圖)의 24품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비평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보한집』의 전권에 나타난 평어를 검토하여 보면 ‘청(淸)’자 계열(예 : 淸新, 淸婉, 淸峭 등)이 상품의 평어로 가장 많이 쓰였다. 다음으로 ‘정(精)’자 계열, ‘호(豪)’자 계열이 많다. 기(奇) · 장(壯) · 화(華) · 준(俊) · 신(新) · 경(警) · 고(高) · 화(和) · 유(幽) · 우(優) · 주(遒) · 간(簡) · 경(勁) · 굉(宏) · 웅(雄) · 표(飄) · 완(婉) · 부(富) · 원(圓) · 호(浩) · 심(深)자 계열도 우수한 시를 일컫는 평어로 쓰이고 있다.
『보한집』의 병품(病品)은 생(生) · 소(疏) · 야(野) · 졸(拙) · 천(淺) · 잡(雜) · 비(鄙) · 미(靡)자 등의 계열을 들고 있다. 『보한집』에서는 병품 중에서도 용졸한 것을 가장 낮게 보았다. 그래서 이르기를 용렬한 말과 옹졸한 글귀는 얕고 쉬워 말할 것조차 못된다고 단언하였다.
『보한집』에서는 시와 그림 양자가 일치한다는 관점을 보였다.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시와 그림은 한가지이다. 상외(象外)의 세계까지 포착하는 점에서도 양자는 같다고 하였다. 『보한집』은 시론이나 시평 외에도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각 문체(文體)의 발달과정과 특징 등을 설명하고 변려문(騈儷文)의 병폐에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시와 문을 나누어 기술하고 시대 순으로 서술하여 약하나마 문학사 기술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최자는 자기 나름의 시문관과 비평관을 가지고 비평기준과 시품(詩品)을 제시하는 한편, 그에 입각하여 비평을 전개하였다. 그럼으로써 고려시대의 비평문학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다만 『보한집』이 『파한집』의 속보(續補)를 표방했지만, 이인로보다도 이규보에게 너무 치우친 평가를 하고 있는 점이 하나의 흠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최자가 이규보의 후광에 크게 힘입어 출세한 것과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