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탈 및 병산탈 중 하회탈 - 중탈
하회탈 및 병산탈 중 하회탈 - 중탈
연극
개념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만들어 주로 얼굴에 써서 분장에 사용하는 물건. 가면.
이칭
이칭
가면
정의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만들어 주로 얼굴에 써서 분장에 사용하는 물건. 가면.
개설

한자어로는 면(面)·면구(面具)·가면(假面)·대면(代面)·가두(假頭)·가수(假首) 등이라 하고, 우리말로는 광대·초라니·탈·탈박·탈바가지 등으로 불러왔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얼굴 앞면을 가리는 면구를 가면, 머리 전체 후두부(後頭部)까지 가리는 것을 가두·가수·투두(套頭)라고 하여 구별하기도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탈’이라는 말이 가면을 나타내는 우리말로 쓰여지고 있지만, 우리 탈놀이[假面劇]에 사용되는 탈은 모두 얼굴 전면을 덮게 되어 있으며, 탈 뒤에는 ‘탈보[假面布]’가 붙어 있어서 이것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후두부를 가리게 되어 있다. 이 점으로 보아 우리나라 탈은 그리스가면이나 기악면(伎樂面)과 마찬가지로 가두에 가깝다고 하겠다.

탈은 동양이나 서양, 문명한 민족이나 미개한 민족이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민족 사이에 존재하며 기원도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 원시민족사회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탈의 발생

탈은 원시시대의 집단생활에서 여러 가지 종교의식에서 신령·악귀·요괴·동물 등 비인간적인 것으로 가장하여 주술(呪術)을 행할 필요에서 요구되었다. 그 하나는 외적이나 악령을 위협하기 위하여, 두번째는 신의 존재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번째는 죽은 사람을 숭배하고 죽은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하여, 네번째는 토테미즘(totemism)의 신앙에서 여러 가지 동물로 가장하기 위한 의태(擬態)에서 발생한 것 등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발생된 탈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외적이나 악령을 위협하기 위한 탈로는 5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상례(喪禮) 때 사용되었던 방상시가면(方相氏假面)과 음력 정초의 악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행사 때 사용되었던 사자가면(獅子假面)이 있다.

또한 신의 존재를 표시하기 위한 탈로는 개성 덕물산(德物山) 위의 신당(神堂: 장군당과 부인당)과 영천군 신령면(新寧面)의 무당 신막(神幕)에 안치돼 있던 광대시(廣大氏)·창귀시[倀鬼氏]·소미시·놋도리 및 장군가면 등이 있는데, 이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무당이 그 가면에 고사를 지낸다.

죽은 사람을 숭배하고 비슷하게 만들기 위한 탈로는 문헌상에 나타난 것과 같이 신라시대의 관창(官昌)의 탈과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김락(金樂) 등의 탈이 그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팔관회(八關會)를 열고 신숭겸·김락 두 장수를 비롯하여 전사한 공신들의 가상(假像)을 만들어 열석(列席)시켰다. 이 제전(祭典)은 그 뒤 해마다 되풀이되었는데, 1120년에 고려 예종이 향가(鄕歌) 형식의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어 신숭겸·김락 두 장수를 추모하였다.

그리고 동물로 가장하기 위한 의태에서 발생한 탈로는 원숭이·범·담비·사자를 비롯하여 십이지(十二支)의 소·말·토끼·양·돼지·개 가면 등이 있다. 이들 가면은 산대(山臺)·봉산(鳳山)·강령(康翎)·마산(馬山)·통영(統營)·수영(水營)·하회(河回)의 탈놀이에서, 또 십이지의 탈은 조선왕조 궁중의 나례(儺禮) 행사 때에 사용돼왔다.

이러한 것이 한편으로는 그대로 신성시된 형태로 제마초복의 탈과 같은 신앙가면(信仰假面)이라는 것으로 전래되고, 또 한편으로는 점점 가무(歌舞)를 주로 하는 예능의 주요소의 하나가 되어 세월이 흐를수록 사실적으로 정교해져 예능가면(藝能假面)으로서 예술적으로 완성되어갔다.

한국 탈의 역사

우리나라의 탈이나 탈놀음의 시작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패면(貝面)과 강원도 양구에서 출토된 토면(土面) 등 신석기시대의 가면유물을 들 수 있다. 그 뒤 6세기경의 것으로 추측되는 나무로 만든 옻칠을 한 탈이 발견되었다.

이는 1946년 경주 노서리(路西里) 고분인 호우총(壺杅塚)에서 출토된 유물가면으로 그 구조는 나무로 만든 탈에 옻칠을 한 것인데, 눈알은 유리이고 두 눈에는 황금으로 된 환(環)이 둘려져 있다.

이 탈은 방상시가면으로 보이는데, 방상시가면은 황금사목(黃金四目)을 연상하게 되므로 그 탈의 눈이 두 눈인 것이 이상하게 생각된다.

하지만 『태평광기(太平廣記)』 견이록(甄異錄)에 두 눈의 방상시가면이 있음을 말하고 있고, 『순자(荀子)』 비상편(非常篇)에도 두 눈의 방상시가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탈은 방상시가면이 틀림없다. 신라시대의 이 탈은 당시 왕후·귀족들의 상례 때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해석과는 달리 이 유물은 탈이 아니라 화살통이라는 견해도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밖에 덕물산가면(德物山假面)과 1964년 국보로 지정된 13개의 하회(河回)탈 및 병산(屛山)탈 등 옛 가면이 전해지고 있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 제사조(祭祀條)에 보이는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 중 월전(月顚)·대면(大面)·속독(束毒)·산예(狻猊)의 네 가지이므로, 이는 실로 9세기 말엽의 일로 탈 및 탈놀음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다.

이 밖에도 신라시대에는 탈놀음으로 검무(劒舞)와 처용무(處容舞)가 있었다고 하나 이에 대한 정확한 문헌과 유물은 없다. 하지만 19세기의 조선조 현종 때의 학자 민주면(閔周冕)이 『구동경지(舊東京志)』를 증보, 간행한 『동경잡기(東京雜記)』 풍속조에 검무가 탈놀음임을 밝히고 있다.

이 가면검무는 중국 북제(北齊) 난릉왕(蘭陵王)의 고사(故事)를 놀이화한 대면희(大面戱)와 같이 나이 어린 관창의 용감한 이야기를 춤으로 놀이화한 것이다.

처용무는 고려·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탈을 쓰고 춤추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고려사』 고종 23년(1236)조에 복야(僕射) 송경인(宋景仁)이 취흥하여 처용무를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문헌상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나례행사 때 방상시가면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나례의 신앙가면에서 뒷날 예능가면으로 진전하였다.

조선왕조에는 산대잡희(山臺雜戱)에서 파생된 산대가면극(山臺假面劇)을 비롯하여 최근까지 우리 민간에 연중행사의 하나로 각 지방에서 연희되어 오던 해서가면극(海西假面劇)·야류(野遊)·오광대가면극(五廣大假面劇)·서낭신제가면극[城隍神祭假面劇] 등이 있어 여기에 사용된 탈이 무척 많다.

한국 탈의 종류와 구조

우리나라 탈은 크게 신앙가면과 예능가면으로 나눌 수 있다. 신앙가면이란 일정한 장소에 가면을 안치하여 두고 그 가면에 제사(또는 고사)를 지내거나 가면을 얼굴에 쓰고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능가면이란 얼굴에 가면을 쓰고 무용할 때나 연극할 때 사용하는 것을 말하며, 이 예능가면에도 신앙적 일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신앙가면에는 일정한 장소에 안치해 두고 고사만을 지내는 신성가면(神聖假面)과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얼굴에 쓰는 구나가면(驅儺假面)이 있다. 이 신성가면에는 광대시가면·창귀시가면·소미시가면·놋도리가면·장군가면이 있고, 구나가면에는 방상시가면과 사자가면이 있다.

둘째, 예능가면에는 춤을 출 때 얼굴에 쓰는 무용가면, 연극할 때 쓰는 연극가면이 있다. 이 무용가면에는 처용무가면이 있고, 연극가면에는 산대가면극·해서가면극·야류·오광대가면극·서낭신제가면극의 탈이 있다.

우리나라 탈의 구조를 보면 그 대부분은 움직이지 않는 조형(造型)에 지나지 않으나, 방상시가면의 눈알과 봉산사자가면의 눈알, 북청사자가면의 입, 산대가면극의 눈끔적이가면의 양쪽 눈, 마산오광대가면극의 턱까불가면의 턱을 비롯하여 동래야류가면극의 양반탈의 턱, 수영야류가면극의 수양반(首兩班)탈의 턱, 하회가면극의 선비·양반·중·백정 탈의 턱, 그리고 해서가면극의 황주양반탈의 턱은 움직이는 것이다.

한국 탈의 특징

우리나라 탈은 한국적인 표정을 지니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의 골격과 용모가 잘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역(役)에 따른 인물의 개성도 잘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하회가면의 선비·양반·각시·중·백정 등이 그러하며, 그 가면들의 사실적인 조각수법은 우리나라 나무탈 중 일품(逸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탈은 대부분 그 형모가 괴이하고, 또 색채가 짙은 데 그 특질이 있다. 이것은 대부분 야간에 장작불 아래에서 연출되므로 강렬한 색채로써 하지 않으면 표현의 힘을 약하게 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면극에 사용하지 않는 개성 덕물산의 신앙가면과 야간에 연희하지 않는 하회 및 강릉의 탈은 색채가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

그리고 그 탈들의 용모가 무시무시함과 동시에 표정이 매우 딱딱한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그리고 색채상으로 보면 주홍색이 대부분이고, 그 다음에 흑남색을 주로 많이 사용하였으며, 또 금색·은색도 적지않게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탈 중에 하회의 나무로 만든 가면에는 얼굴의 상반부와 하반부인 턱을 따로따로 만든 것이 있는데, 이는 끈으로 연결한 것으로서 얼굴의 표정을 변화시키는 데 대단히 유리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색채·형모 외에 거의 모든 탈에는 탈보인 헝겊조각 및 노끈을 탈 뒤에 붙여놓았다.

이것으로 연희자는 탈을 자기의 머리에 밀착시켜 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고 또 추한 자기의 후두부를 관람자에게 보이지 않아도 된다.

가면은 대다수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나 그 중 더러는 여러 가지 신의 형상을 표시한 것도 있다. 방상시가면·처용가면·오방신장가면(五方神將假面)·산대가면극에 있어서 연잎가면[蓮葉假面]과 눈끔적이 탈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영노와 같은 가상(假想)의 동물탈도 있으며, 연극의 줄거리가 희극적인 관계로 실제의 동물탈도 상당히 있다. 즉, 산대가면극·해서가면극의 원숭이, 오광대가면극의 사자·범·담비 등과 같은 탈이 그것이다.

그리고 양반가면은 대부분 쌍언청이·언청이·입비뚤이·코비뚤이·사팔뜨기 등 불구자의 용모가 특징인데 이는 조선시대 양반계급에 대한 평민들의 반감이 탈에 반영된 것이다. 우리나라 탈은 형모가 괴이하고 색채가 짙은 데 특질이 있지만, 그 표정은 사실적이기보다 대부분 상징적인 것이 또한 그 특색의 하나이다.

탈 제작기법

탈의 제작기법은 재질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탈은 재료에 따라 나무탈·종이탈·바가지탈·털가죽탈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종이탈과 바가지탈이 주종을 이루는데, 그것은 재료의 특징 때문이다.

종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손쉽게 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바가지는 이미 그 형상이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조금만 손질을 하면 탈을 완성할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재료는 가벼워서 탈을 만들어 쓰고 탈춤을 추는 데 편리한 까닭도 있다. 이 밖에도 사자탈과 같이 규모가 큰 특수한 탈은 소쿠리나 키를 이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종이탈은 몇 가지 방식으로 제작된다. 첫째, 종이를 얼굴 모양으로 자르고 먹과 물감으로 그려서 얼굴에 쓸 수 있도록 한 종이탈이 있다.

동해안에서 별신굿을 하는 세습무(世襲巫)들이 탈굿을 할 때, 한지(韓紙)를 이용해 눈·코·입 부분을 적절히 가위로 오리고 먹과 물감으로 채색하여 인물에 맞는 탈을 만든다. 종이에 거의 손질을 하지 않는 탈도 있다. 한지를 그대로 보자기처럼 덮어쓰고 목 부분을 끈으로 묶은 다음 눈만 뚫어준다.

복면에 가까운 탈로 제주도의 도깨비탈은 이렇게 만든다. 한지 한 겹으로 만든 평면적인 종이탈이지만, 한지의 재질로 인하여 얼굴에 쓰고 있는 동안 얼굴 각 부위의 윤곽이 드러나서 입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진주오광대탈은 마분지를 사용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만든다.

두꺼운 마분지를 세로로 접어서 윤곽을 오리고 눈과 입 등을 도려내어 좌우가 대칭을 이루게 한다. 코는 다른 종이를 덧붙여서 코의 입체감을 살린다.

둘째, 흙으로 탈의 모양을 양각(陽刻)으로 만든 다음 그 위에 한지를 여러 차례 발라서 말리고 흙으로 탈의 형상을 떠낸다. 여기다 눈·코·입을 뚫고 물감으로 채색하여 탈을 완성시킨다.

이와 반대로 음각(陰刻)한 탈의 모형에 안쪽으로 종이를 발라서 탈을 떠내기도 한다. 양각의 모형에서 떠내는 경우에는 탈의 표면이 모형보다 무디게 나오고 모형을 그때마다 부수어야 한다.

셋째, 신문지와 마분지 등을 물에 오랫동안 불려서 풀을 넣고 절구로 찧어 종이찰흙을 만든 다음, 이 종이찰흙으로 탈을 빚어 만든다. 고성오광대탈은 이렇게 제작되는데, 종이찰흙의 재질감 때문에 탈의 표면이 매끈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바가지탈은 잘 마른 바가지를 이용해 만든다.

먼저 바가지를 얼굴 모양으로 적당하게 자른 다음 눈과 입은 도려내고, 눈썹과 코는 짚·새끼·노끈·털가죽·나무조각 등을 덧붙여서 만든다. 또 얼굴의 혹은 종이찰흙을, 귀는 바가지 조각을 이용해 만들어 붙인다.

따라서 바가지탈은 얼굴형이 바가지 모양으로 통일되어 있다. 탈의 형상이 완성되면 한지를 몇 겹 바른 다음 채색을 한다. 가볍고 제작하기 편리한 장점이 있다.

나무탈은 오동나무와 오리나무 등을 이용하여 칼로 깎아 제작한다. 따라서 나무탈은 조각품이라 할 수 있다. 원목을 깎아내어 만들되 수염 외에는 덧붙이는 것이 없다.

탈의 형상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탈의 뒷면을 깊게 파내어 얼굴에 쓰기 알맞도록 한다. 나무탈 위에 종이를 바르고 채색을 한다. 나무탈로는 하회탈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는데 턱이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작과정에 턱을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탈의 형상을 온전하게 완성한 다음 턱을 따로 떼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노끈으로 연결하므로 전혀 이질감이 없다.

하회탈은 턱이 떨어져 있어서 자유로이 움직일 뿐 아니라, 입체감이 특히 강하며 좌우대칭을 이루지 않도록 조각하여 상하 좌우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바뀌므로 고정적인 탈의 한계를 극복하여 그 기법이 주목된다. 털가죽탈은 종이로 먼저 탈의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털가죽을 붙여서 제작하였다.

주로 개의 털가죽을 사용한다. 바가지에 털가죽을 입히는 경우도 있고 먼저 털가죽을 얼굴에 맞게 잘라서 그 안쪽에 종이를 여러 겹 바르는 경우도 있다. 눈과 입은 구멍을 뚫어서, 코와 눈썹은 다른 털가죽을 덧붙여서 나타낸다. 머리털·눈썹·수염 등을 나타내는 데에는 실제 머리카락이 쓰이기도 하지만, 실이나 털가죽이 쓰이는 경우가 흔하다.

탈을 덮어 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검은색 헝겊으로 만든 탈보를 탈 뒷면에다 부착시킨다. 탈보는 머리카락을 나타내기도 하고 쓴 탈을 얼굴에 고정시켜주는 구실도 한다.

탈의 형상과 색상

일반적으로 우리 탈의 형상은 기괴망측하게 생겼다고 한다. 실제보다 코·입·눈이 과장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코는 삐딱하고 눈꼬리는 사납게 찢어져 있는가 하면, 입이 크게 비뚤어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언청이탈·문둥이탈·옴탈과 같이 특수한 입이나 안면(顔面)을 지니는 탈 외에도 이마·볼·턱 등에 커다란 혹이 제멋대로 나 있고, 이가 어긋나게 톱니처럼 두드러져 있으며, 이마가 넓고 파도처럼 주름이 많아서 얼굴 각 부위의 비례가 맞지 않는 탈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탈이 인간적이다. 기괴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자탈이나 원숭이탈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 점 또한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형상은 얼굴의 윤곽과 비슷하게 타원형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바가지탈의 경우는 거의 원형에 가깝고 나무탈과 종이탈은 장방형·역사다리꼴·역삼각형 등 다양하다. 가죽탈은 특히 모가 나게 생겼다.

일반적으로 우리 조각품이 평면적인 것과는 달리 가죽탈을 제외하면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부분적인 형상을 보면 눈이 대체로 크고 동그랗거나 치켜 뜬 모양을 하고 있다. 실눈을 하고 있는 것은 하회탈의 일부뿐이다. 코는 남녀노소에 따라 달라 젊은 남성탈은 코가 지나치게 크게 과장되어 있고, 여성탈은 콧대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거나 굽어 있다.

입은 단순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입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서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면, 밑으로 깊게 처져서 불만스러운 모습을 짓고 있기도 하다. 언청이와 입비뚤이 등 병신스러운 입 모양을 하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치켜 덮고 있어 심술궂은 입 모양을 하고 있는 탈도 있다.

귀는 없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산대탈이나 오광대탈에는 귀가 있다. 동래와 수영의 들놀음탈에는 귀가 특히 과장되어 있다. 통영오광대의 양반탈은 턱이 없고, 하회탈의 일부는 턱이 분리되어 있다.

탈광대의 움직임에 따라 턱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므로 웃는 표정과 화난 표정을 가변적으로 지어 보일 수 있다. 산대놀이의 눈끔적이탈과 함께 탈의 고정성을 뛰어넘은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색상은 대체로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원색으로는 붉은색·검은색·흰색이 많이 보이며, 푸른 남색도 더러 있다. 간색(間色)으로는 얼굴색에 가까운 황색이 주로 쓰인다.

사실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인물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에는 원색이 기능적이다. 탈의 원색들은 신분계층에 따라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남녀노소에 따라서 일정한 성격을 부여한다.

늙은이 탈은 검고 어두우며, 젊은이 탈은 붉고 밝으며, 젊은 여성의 탈은 흰색이 많다. 이들 색상은 방위와 계절을 나타내기도 한다. 검은색은 죽음의 계절인 겨울을 나타내며 북쪽을 뜻한다.

붉은색은 생산의 계절인 여름을 나타내며 남쪽을 뜻한다. 늙은이 탈이 검은색이고 젊은이 탈이 붉은색인 것은 겨울과 여름의 계절적 상징과 관련되어 있다.

탈춤에서 보이는 노소의 극중 싸움에서 늙은이가 지고 젊은이가 이기는 것은, 겨울과 여름의 싸움굿에서 겨울을 물리치고 여름이 승리함으로써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간색으로 칠한 것은 하회탈이 대표적이다. 간색을 칠하되 미리 몇 가지 색으로 배합된 간색을 한 차례만 칠한 것이 아니라, 몇 차례로 나누어 거듭 칠함으로써 입체감과 사실성이 두드러졌다.

이를테면 부녀와 각시탈은 살색인 주황색을 몇 차례 칠한 위에 다시 흰색을 덧칠하고, 그 위에 연지·곤지를 찍어서 화장한 여성의 얼굴을 실감 있게 표현하였다.

눈썹의 경우도 곧바로 검은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녹색을 칠하고 난 다음 검은색을 덧칠하여 한층 깊이를 느끼게 하였다.

탈의 성격 표현

탈의 성격 표현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인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놓고 극중 행동을 통해 어긋난 면을 폭로하는 경우와, 처음부터 인물의 부정적인 성격을 형상화하여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하회탈은 앞의 경우에 해당되고 다른 탈들은 뒤의 경우에 해당된다.

하회의 양반탈은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안색이 밝아서 허우대가 멀쩡한 양반의 인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극중에서 하는 행위와 말은 양반답지 못하게 함으로써, 양반의 드러나지 않은 허위를 폭로하는 효과를 올린다.

그리고 초랭이탈은 이와 달리 입이 비뚤어져 턱이 뾰족하고 콧대가 잘려 있으며, 얼굴색이 검붉어서 못난 아랫사람의 성격과 말의 자유가 제약되어 있는 신분적 한계를 그럴듯하게 형상화하고 있으면서도, 극중에서는 이러한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어서 상층의 허위를 비판하는 구실을 적극적으로 한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는 셈이다.

따라서 하회탈은 인물의 생김새와 행위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인물의 성격을 역설적으로 풍자하는 효과를 올리는 것이다. 즉, 멀쩡하게 생긴 양반은 병신짓을 하고, 병신처럼 생긴 초랭이는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나머지 탈들은 대부분 탈의 생김새에서 극중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양반의 바보스러움과 병신스러움을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기 위하여 언청이와 문둥이 등으로 형상화하고, 노승의 관념적 허위를 풍자하기 위하여 검은 얼굴에 파리똥이 덕지덕지 앉은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탈의 형상에서 이미 비판적인 극중 인물의 성격을 희화적(戱畫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말뚝이탈은 코를 과장하여 남성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들놀음의 말뚝이탈은 코가 이마에서부터 입까지 걸쳐 길게 늘어져 있을 뿐 아니라 모양도 남성의 성기에 가깝다. 과장된 성기 모양의 코는 성생활을 건강하게 즐기는 민중의식의 반영이자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탈의 색상도 인물의 성격을 일정하게 창조하는데, 붉고 짙은 색의 탈이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나타낸다면, 누렇고 옅은 색의 탈은 바보스럽고 무능한 성격을 나타낸다. 검고 어두운 색의 탈은 찌들리고 소외당한 인물의 성격을 나타낸다. 고성오광대의 홍백양반탈은 인물의 이중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얼굴 좌우에 붉은색과 흰색을 칠하기도 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또는 탈의 움직임에 따라서 표정이 바뀌는 탈로는 하회탈이 있다. 특히, 입체성이 강한 탈은 상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바뀌고, 좌우가 어긋나게 형상화된 탈은 좌우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

양반탈은 눈두덩·광대뼈 등을 갈매기 모양의 곡선으로 깊게 파서 아래위의 움직임에 따라, 초랭이탈은 입매를 좌우 상반되게 형상화하여 좌우 움직임에 따라 화난 표정과 웃는 표정으로 바뀐다.

그리고 각시탈과 같은 경우에는 내려깐 눈과 정면을 응시하는 눈을 함께 조형함으로써 각시에 대한 사회적 제약과 이를 극복하려는 각시의 내면적인 의식을 더불어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하회탈은 부조화의 조화를 통하여 탈의 고정성을 극복한 창조적 성격 표현을 하고 있다. 우리의 탈은 시대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고, 각 시대의 인물들을 계층·남녀·연령별로 두루 보여주고 있다.

고려탈인 하회탈의 경우에는 양반·선비·초랭이·이매 등으로 인물의 상하우지(上下愚智)의 성격을 고루 표현하고, 각시·부녀·할미 등 여성탈은 생산력에 따라 처음·중간·끝을, 중·백정탈은 성속(聖俗)의 관계를 두루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탈에는 포도부장·포졸, 심지어 순사와 같은 탈이 나타나고, 용산 삼계 덜머리집과 같은 술집여자 및 취발이·신장수와 같은 탈이 등장하여 시장형성에 따른 상업적인 인물이 나타난다. 왜장녀·서울애기와 같은 탈도 조선조 후기에 등장한 탈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회가 점점 복잡하여짐에 따라 새로운 탈이 계속 생겨나는가 하면, 같은 탈의 숫자도 계속 불어난다. 그러나 같은 인물의 탈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형상화되기도 한다.

고려탈인 하회의 중탈은 색상이 밝고 호방하게 웃는 상을 하고 있는데, 조선시태 중탈은 한결같이 어둡고 찌들려 있어 울상들을 하고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의 중탈과 불교를 좌도로 몰아 탄압하던 조선시대의 중탈이 지닌 시대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회탈이 고려자기에 비유된다면 후대의 탈들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질그릇에 비유된다. 이것 또한 당시의 조각품이 지닌 일반적인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고려의 조각품에 비하여 조선의 조각품이 일반적으로 나빠진 경향이 있다.

고려의 불교조각품이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조선의 것은 정적일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불교조각의 퇴보에서 오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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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에 담긴 조형과 상징」(조동일,『문학이라는 시비거리』, 이우출판사, 1983)
「한국탈의 제작기법」(김기수,『한국의 탈』, 국립민속박물관,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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