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우룡 ()

현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을 모집하며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고 해방 이후, 민주독립당 선전부장을 역임한 정치인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 12월 30일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함경남도 신흥
정의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을 모집하며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고 해방 이후, 민주독립당 선전부장을 역임한 정치인 · 독립운동가.
생애 / 활동사항

엄우룡은 1918년 고향에서 영춘학교(永春學校) 졸업 후 1919년 2월 간도(間島)로 가 신흥무관학교에 다니다가 그해 8월 군자금과 학생 모집을 위해 입국했다. 1920년 7월 의열단원 김상옥(金相玉)의 상해행 여비 조달을 위해 유득신(劉得信)과 경기도평의원 박완상(朴完相)에게 2천원 출금을 요구하는 등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그가 속한 국민당이 한국독립당에 흡수된 후 1947년 6월 초 안재홍 등과 반탁노선을 반대하고 자주독립을 위해 미소공위를 지지해야 한다면서 한독당을 탈당했다. 이후 한독당 탈당파가 결성한 신한국민당은 1947년 9월 홍명희의 주도에 힘입어 민주통일당, 민중동맹, 신진당, 건민회 등 4당과 통합, 민주독립당을 결성했고 엄우룡은 선전부장을 맡았다. 1947년 11월 엄우룡은 유엔총회의 한반도문제 결의안 지지 기자회견을 하면서 1948년 1월 민주독립당을 탈당했는데 한국전쟁 때 납북(또는 월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참고문헌

『남북협상 : 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서중석, 한울, 2000)
『한국정당통합운동사』(김현우, 을유문화사, 2000)
『벽초 홍명희 연구』(강영주, 창비, 2000)
『대한민국(大韓民國) 독립유공자(獨立有功者) 공훈록(功勳錄)』제9권(국가보훈처 편, 199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