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

영화
개념
영화제작 과정에서 연기 · 촬영 · 녹음 · 편집과정 등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총책임자.
정의
영화제작 과정에서 연기 · 촬영 · 녹음 · 편집과정 등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총책임자.
개설

프로듀서로부터 의뢰받은 스크립트를 필름에 옮기는 일을 담당한다. 배우의 선정, 스태프의 구성, 촬영대본을 작성하며 촬영·녹음·편집과정을 지휘한다. 그 능력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프로듀서와 함께 영화제작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소규모 영화에서는 제작을 겸하기도 한다.

내용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은 저축계몽영화인 「월하의 맹세」(1923)를 연출한 윤백남(尹白南)이다. 무성영화 시기에는 「아리랑」(1926), 「풍운아(風雲兒)」(1926), 「사랑을 찾아서」(1928) 등을 연출한 나운규(羅雲奎)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아리랑」은 당대 현실을 반영하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최초의 토오키 영화는 1936년 제작된 「춘향전(春香傳)」으로 이명우(李明雨)가 연출했다. 그는 감독보다는 카메라맨으로 더 큰 활약을 했다. 이밖에 이경손(李慶孫), 안종화(安鍾和), 김유영(金幽影), 이규환(李圭煥), 안석주(安碩柱), 박기채(朴基采), 전창근(全昌根), 방한준(方漢駿), 최인규(崔寅奎), 이병일(李炳逸) 등이 해방 전에 활약하던 영화감독이다.

1950년대에는 「춘향전」(1955)의 이규환, 「자유부인(自由夫人)」(1956)의 한형모(韓瀅模), 「시집가는 날」(1956)의 이병일 등 해방 전부터 활약하던 영화감독들 외에 홍성기(洪性麒), 신상옥(申相玉), 유현목(兪賢穆), 김기영(金綺永) 등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중 「별아 내 가슴에」(1958)의 홍성기는 세련된 멜로드라마의 연출로 유명했다. 「로맨쓰빠빠」(1960), 「성춘향(成春香)」(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을 연출한 신상옥은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제작사인 신필름의 제작자로 활약했다. 또한 나운규의 「아리랑」이후 최대의 성과로 평가받는 리얼리즘 영화 「오발탄(誤發彈)」(1961)을 연출한 유현목과 독특한 표현주의 영화 「하녀(下女)」(1960)의 김기영,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걸작 「만추(晩秋)」의 이만희(李晩熙)는 196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대표적인 감독이다.

1970년대에는 하길종(河吉鐘), 이장호(李長鎬)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하길종은 시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풍자와 허무, 당시의 풍속도를 보여주는 「바보들의 행진」(1975)이 대표작이다. 이장호는 부조리한 현실과 젊은이의 좌절을 그린 「별들의 고향」(1974)을 비롯해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보선언」(1984) 등 문제작을 연출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영화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감독은 임권택(林權澤)이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그는 1980년대 「짝코」(1980), 「만다라」(1981), 「길소뜸」(1985),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등 화제작을 연출했으며, 2002년 「취화선」으로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1980∼1990년대 주목받는 영화감독으로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의 배창호(裵昶浩), 「거짓말」(1999)의 장선우(張善宇),「아름다운청년 전태일」(1995)의 박광수(朴光洙) 등이 꼽힌다.

현황

1990년대 후반 이후 금융자본의 유입으로 한국영화산업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과 멀티플렉스영화관을 이용한 와이드릴리즈 방식의 배급이 이 시기 한국영화산업의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실미도」(2003)의 강우석(康祐碩)과,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강제규(姜帝圭)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감독이자 제작자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질적 성장을 증명하듯 우리 영화감독의 해외영화제 수상도 이어지고 있다. 이창동(李滄東)은 「오아시스」로 2002년 제59회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시」로 2010년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김기덕(金基德)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박찬욱(朴贊郁)은 「올드보이」로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박쥐」로 2009년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홍상수, 봉준호(奉俊昊) 등도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국 영화감독이다.

의의와 평가

우리 영화감독들이 세계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한국영화는 눈부신 성장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산업적 변화로 인한 노장감독의 부재, 성공적인 데뷔작을 연출하지 못하면 소모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신인감독들의 처지는 한국영화계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문제이다.

참고문헌

『영화사전』(김광철·장병원, media2.0, 2004)
『한국영화감독사전』(김종원, 국학자료원, 2004)
집필자
한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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