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

현대문학
인물
해방 이후 『산 너머 남촌』 · 『매월당 김시습』 ·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을 저술한 소설가. 동시시인.
이칭
이칭
(호) 명천(鳴川)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1년
사망 연도
2003년 2월 25일
본관
한산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2동 387번지 갈머리
관련 사건
정치쇄신특별조치법(1980. 국보위) 해당자가 됨
내용 요약

이문구는 해방 이후 『산 너머 남촌』·『매월당 김시습』·『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자 동시 시인이다. 1963년 『현대문학』에 「다갈라 불망비」가, 1966년 「백결」이 추천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 『관촌수필』 연작, 1981년 『우리 동네』 연작으로 농촌사회를 풍자적으로 다루었다. 199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이문구는 민중의 삶을 그들의 말과 주체적인 양식으로 그려냈다. 농촌 현실을 전(傳)의 양식과 충청도 지역어를 풍부하게 활용한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의
해방 이후 『산 너머 남촌』 · 『매월당 김시습』 ·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을 저술한 소설가. 동시시인.
개설

민중의 삶을 그들의 말과 주체적인 양식으로 그려낸 소설가. 특히 농촌 현실을 전(傳)의 양식과 정신을 이어받은 형태로, 충청도 지역어를 풍부하게 활용한 문체로 그려냄.

생애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현재 보령시 대천2동) 387번지 갈머리(冠村)에서 농ㆍ어업과 사법대서사를 겸했던 부친의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향교의 직원(直員)이었던 조부는 그에게 한학적 교양과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부친이 남로당 보령지역총책이었던 까닭에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친과 둘째, 셋째 형을 잃었다. 첫째 형은 징용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기에, 대천중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하여 소년 가장 노릇을 하며 학업과 생계를 이어갔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김동리에게 배웠고 그를 사부로 받들었으나 정치적 견해는 달리했다. 작가 활동을 하면서 『월간문학』· 『한국문학』· 『실천문학』 등의 편집과 발간 일을 하였다.

1974년 반독재 투쟁 문인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발기하고 실무간사를 맡았다. 1976년 결혼하고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행정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1980년까지 살며 연작소설 『관촌수필』을 완성하고 『우리 동네』 연작을 시작하였다.

1980년 국보위의 정치쇄신특별조치법에 문인 중 유일하게 정치활동 규제 대상자로 묶이는 등 독재체제 아래에서 여러 규제와 사찰을 당했다.

1988년 작업실을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로 옮겼으며, 199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2003년 2월 25일 타계하였을 때, 장례식이 문단사상 초유의 문예 4단체 합동 문인장으로 치러졌다.

활동사항

『현대문학』 1963년 9월호에 「다갈라 불망비」가, 1966년 7월호에 「백결」이 추천되어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70년에 단편소설 「암소」와 공동묘지 이장공사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첫 장편소설 『장한몽(長恨夢)』을 내놓아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1972년 배경이 어촌인 중편 「해벽(海壁)」을 발표하고 『관촌수필』 연작을 시작한다. 이 작품이 해방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새마을운동 시기까지의 한국 농촌사회를 자전적ㆍ회고적으로 그렸다면, 이어서 발표한 『우리 동네』(1981)는 국가 권력에 억압받고 퇴폐한 도시문화에 찌들어가는 1970년대 농촌 현실을 풍자적으로 다루었다. 이들은 ‘나무 연작’이라 부를 수 있는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2000)와 함께 이문구의 3대 연작소설을 이룬다.

판매금지, 사찰 등의 정치적 억압에 시달리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는 한편 동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특히 『관촌수필』에서 보인 서정성의 다른 결정체로서, 첫 동시집 『개구장이 산복이』(1988)에 담겼다.

장편소설 『산 너머 남촌』(1990)에 이어 발표한, 주인공이 시대와 불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역사소설 『매월당 김시습』(1992)이 독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전통적 가치와 인정을 소중히 여기는 산문집을 여러 권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토착어, 특히 충청도 지역어를 지문에까지 입말투로 사용하기에 먼저 문체 면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이른바 속어(俗語)가 된 그것은 그의 소설에서 공적(公的) 언어인 표준어와 대립관계에 있다.

구조와 허구성 측면에서 서구적 의미의 ‘소설’과 거리가 있는 작품이 많아 평가가 엇갈리거나 혼란스러운 경향이 있다. 특히 연작소설들이 전(傳)의 전통 속에 놓여 있으므로 그는 현대의 전(전기) 작가요 그의 소설은 대체로 민중의 전을 구연(口演)하여 엮은 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전통적이고 주체적인 형태 속에 깔린 가치관이 보수적이라는 비판이 있으나, 빗나간 국가 권력과 무분별한 근대화에 대한 비판정신, 민중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그리고 전통적 언어와 가치에 대한 믿음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의 대표작은 연작소설 『관촌수필』·『우리 동네』, 단편소설 「김탁보전」·「암소」·「추야장」·「장곡리 고욤나무」 등이라 할 수 있다.

상훈과 추모

한국창작문학상, 펜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음. 은관문화훈장 추서됨.

참고문헌

『관촌 가는 길』(구자황 편, 랜덤하우스, 2006. 9)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성 연구』(고인환, 청동거울, 2003. 10)
『한국소설사』(김윤식ㆍ정호웅, 문학동네, 200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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