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약목고분은 '대옹총'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분이 속한 약목고분군은 해발 366m의 수물산에서 동으로 뻗어 내린 소구릉에 돌방[石室] 및 돌덧널무덤[石槨墓] 20∼30여기, 동북으로 이어지는 구릉에 중대형의 봉토분이 40∼50여기, 중간 능선에 소형 돌덧널[石槨]과 돌방무덤[石室墓] 다수가 조영되어 대략 300여기가 분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발굴조사된 약목고분은 동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하단부의 함방뫼 마을에 위치하며, 1960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고분의 구조는 원형 봉토분으로 직경 21m, 높이 북 1m, 동서 3m, 남 5m로 남고북저의 구릉에 축조하였다. 중앙부에 주곽인 1호 돌방을 설치하고 개석을 덮은 후 그 위에 점토로 밀봉하고 다시 크기 20∼40㎝ 크기의 할석과 천석으로 50㎝ 정도 쌓았다. 봉토의 외곽은 묘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호석을 쌓아 돌렸고, 남쪽 호석에 연접하여 1호와 평행하게 2호 돌덧널을 축조하였다. 돌방의 구조는 장방형 판상식 석실로 길이 5.8m, 폭 1.3m, 높이 1.4m 로 석재는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되었으며, 개석은 길이 2m, 폭 1.5m, 두께 30㎝의 대판석 5매를 횡으로 덮고 개석사이의 틈은 할석으로 채웠다. 바닥은 점토로 다진 후 천석을 깔았다. 유물의 배치상태는 벽과 접한 석단 위에 단경호 1점, 파수부배 1점, 교구가 있었다. 그 다음 자갈이 깔린 곳에 마구류와 발형기대·통형기대·무개고배·적색연질옹·장경호 등이 놓여 있었으며, 중앙부에 피장자가 착장한 것으로 판단되는 대도와 철촉군이 있었다. 그 아래 남벽에 고배 10점이 2열로 놓여 있었으며, 서벽에 접하여 대옹·고배·긴목항아리·적색연질토기가 배치되었다.
돌방의 형태는 대구의 비산동 37호분과 내당동 55호분, 성주의 성산동 38호분과 58호분에서 확인되었다. 성산동 고분은 구덩식[竪穴式]으로 판명되었지만, 비산동과 약목고분은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출토된 유물 중 토기류는 전체적으로 5세기 중엽경의 신라토기 양식이지만 낙동강 동안의 대구지역과는 차별성이 있고 성주지역과 양식을 공유하는 특색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낙동강 서안 문화권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