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룡(裵成龍)
배수성(裵秀星)·성산학인(星山學人)·성산생(星山生)·성산인(星山人)·별뫼 등의 필명을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배운홍(裵運鴻)이고,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912년 성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해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수로 들어갔다. 1914년 토지조사국 기수직을 사임하고, 1915년 성주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들어가 4년 동안 근무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교사직을 사임하고 일본 동경으로 유학,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사회과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1923년 봄 귀국한 후 조선일보사 기자가 되고, 그 해 7월 『조선일보(朝鮮日報)』에 「사회변혁과 사상적 고찰」(28회)을 발표하였다. 1924년 가을 조선일보사를 퇴사하고 화요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