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문(高穎聞)
또, 공의당(公議堂)을 설치하여 시무에 밝은 인사들을 참여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정사(政事)의 논의를 돕게 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와같은 사상은 이미 동도서기적 차원(東道西器的次元)을 넘어서 본격적인 개화사상단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채서(採西)의 대상을 서양기술에만 한정하지 않고, 제도 · 법제의 차원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개화사상가들과의 관련은 확실하지 않다. [^1]: 고영문 상소 : 고종실록19권, 1882년(고종 19) 9월 22일. "서구의 기술 습득, 상회소, 국립은행 설립 등에 관하여 고영문이 상소하다" - 『고종실록(高宗實錄)』 - 『일성록(日省錄)』 - 「개항당시의 위기의식과 개화사상」(한우근, 『한국사연구』 2,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