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산군(甲山郡)
1656년(효종 7) 각 도에 영장(營將)을 설치하게 되자 부사가 좌영장을 겸하게 되었고, 진동(鎭東)·동인(同仁)·혜산(惠山)·운총의 4진보(鎭堡) 아래에 단천군내의 황토기(黃土岐)·쌍청(雙靑)의 2보를 영유하기도 했으나 후에 2보는 혁파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아오지만호로 부임하던 중인 이 군의 무과 출신 박경태(朴慶泰)가 안성·죽산 등지에서 반란군을 물리치고 이인좌를 사로잡았다.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따르면, 1759년(영조 35)에 방리(坊里)는 읍사(邑社)·허천사·호린사(呼麟社)·웅이사(熊耳社)·종포사(終浦社)·이리사(二里社)·회사(會社)·동인사·운총사·혜산사·별해사(別害社)·허린사(虛麟社)·별사(別社)·진동사의 14사에 호수 3,711호, 인구 1만6574명(남자 7,583명, 여자 8,99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