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곤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인수부윤, 충청도도절제사, 영안남도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시호
공양(恭襄)
이칭
신천군(信川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11년(태종 11)
사망 연도
1484년(성종 15)
본관
신천(信川)
주요 관직
인수부윤|충청도도절제사|영안남도절도사
관련 사건
계유정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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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 전기에, 인수부윤, 충청도도절제사, 영안남도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신천(信川).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혀 무과에 급제, 내금위(內禁衛) 소속 무장으로, 1452년(단종 즉위년)수양대군이 단종의 고명사은사(誥命謝恩使)로 명나라에 갈 때 수행하였다.

이듬해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가담하여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록되고 행호군(行護軍)이 되었다. 1455년 상호군이 되고, 이해 세조가 즉위하자 첨지중추원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동지중추원사에 오르고 신천군(信川君)에 봉해졌다.

1458년(세조 4)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재임 시 성절 겸 천추사(聖節兼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59년충청도도절제사를 지냈다. 1468년(예종 즉위년)남이(南怡)의 옥사 때 공을 세워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고 전라도절도사가 된 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74년에 영안남도절도사(永安南道節度使)로 부임, 혜산진 등 도내 진보(鎭堡)의 성곽을 개축하도록 하고 민폐를 제거하였다. 1476년 신천군(信川君)에 봉(封)해졌고 1481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성품이 청렴, 강직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시호는 공양(恭襄)이다.

참고문헌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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