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규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사헌부장령,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영남만인소」를 지어 사학을 몰아낼 것을 주장하며 개화정책을 반대하다가 유배된 문신.
이칭
진오(晋五)
역암(櫟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7년(순조 17)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진주(晉州)
출생지
경상북도 봉화군
주요 저서
역암문집(櫟庵文集)
주요 작품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주요 관직
사헌부장령|예조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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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사헌부장령,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영남만인소」를 지어 사학을 몰아낼 것을 주장하며 개화정책을 반대하다가 유배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진오(晉五), 호는 역암(櫟庵). 경상북도 봉화출생. 아버지는 강필응(姜必應)이다. 이황(李滉)을 사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5년(헌종 1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 박사와 전적(典籍)을 지냈고, 1864년(고종 1) 사헌부 장령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에도 금산사(金山寺) · 태고사(太古寺) 등 사찰에 관한 내용이 많다.

당시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학에는 강하게 반대하여 1881년「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를 지어 사학(邪學)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영남 유생들에게 통문을 보내 연합전선을 펴면서 개화정책을 반대하다가 이만손(李晩孫)과 함께 유배되었다. 저서로는 『역암문집(櫟庵文集)』 12권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고종실록(高宗實錄)』
『역암문집(櫟庵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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