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13책. 고활자본. 서문·발문이 없어 간기(刊記)는 자세하지 않다.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2에 시 184수, 소 10편, 서계(書啓) 6편, 의(議) 2편, 권3∼18에 서(書) 596편, 권19·20에 잡저 13편, 서(序) 10편, 기 8편, 발 12편, 권21∼23에 고축문(告祝文) 11편, 제문 22편, 신도비명 1편, 비(碑) 3편, 묘갈명 6편, 묘표 1편, 광지(壙誌) 1편, 권24∼26에 묘지명 6편, 시장(諡狀) 2편, 전(傳)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는 모두 재야 학자로서 국왕의 부름을 사양하는 글로, 당시 국왕이 선비를 중하게 여긴 일과 선비가 겸양의 덕을 나타내고자 함을 알 수 있는 글이다. 「경연계강책자품정의(經筵繼講冊子稟定議)」는 경연에서 강론할 책을 품정(稟定: 왕에게 여쭈어 의논하여 결정함)하는 의론으로, 이이(李珥)의 『성학집요』가 제왕이 행해야 하는 학문을 구비하고 있으므로 경연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한 글이다.
서(書)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반수가 넘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저자의 경륜과 학문의 총정리라 할 수 있다. 「상매산선생(上梅山先生)」은 홍직필(洪直弼)과 29차에 걸쳐 『태극도설(太極圖說)』의 동(動)과 정(靜)의 구분과 양자의 관계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논변하고 있다.
또한, 『맹자』의 ‘호연장(浩然章)’에서 호연한 기운이 줄어드는 데 대한 원인과 경위, 『시경』의 주남편(周南篇)에 투영된 인정(仁政)의 효과와 백성들이 스스로 주(周)의 덕화를 따르게 된 의미에 대해 자세히 묻고, 처첩의 관계, 적서의 분류 등 광범위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답이경학면재(答李景學勉在)」는 이면재(李勉在)와 7차에 걸쳐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성리학에 대한 질문에 답한 것으로, 이이·송시열(宋時烈)·김창협(金昌協)의 설과 고전을 인용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원리를 설명하고, 자기의 뜻은 김창협의 이론을 지지하며 여타의 설은 따르지 않는다고 변명하였다. 이것은 당시 성리학으로 빚어진 호론(湖論)과 낙론(洛論)의 시비와 성리 논쟁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자료가 된다.
잡저 가운데 「변임명로생지위성설(辨任明老生之謂性說)」은 임헌회(任憲晦)가 생(生)이 곧 성(性)이라는 말을 추가 보충한 것으로, 생이란 성의 본연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정호(程顥)의 설이요 또 하나는 김창협의 설로, 비록 다른 것 같지만 실은 일맥상통해 끝에 가서는 꼭 부합된다고 설명하며 임명로의 성리설을 두둔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