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청운(菁雲).
1886년 일본공사접응관차(日本公使接應官差)를 거쳐, 1887년 주미공사수원(駐美公使隨員)으로 미국에 다녀온 뒤 법부주사(法部主事)를 지내고, 1905년에는 학부위원(學部委員)을 역임하였다. 미국에 체류하던 때와 귀국후에 그린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 「종남귀래도(終南歸來圖)」, 「오음구화도(梧陰話舊圖)」 등을 묶어 『미사묵연(米槎墨緣)』 화첩을 남겼다.
1911년에 창립된 경성서화미술원에 관여하고, 이듬해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의 교수진에 조석진(趙錫晉)·안중식(安中植) 등과 참여하여서 글씨와 전통화법을 가르쳤다. 1918년 민족서화가들의 단체로 서화협회(書畵協會)가 창립될 때에는 13명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글씨는 전서(篆書)와 예서(隷書)에 능했고, 그림에서는 매화를 즐겨 그렸으나 전하는 작품이 별로 없다. 『종정와전명 임모도(鐘鼎瓦甎銘臨模圖)』(1916) 병풍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