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도굴되어 무덤의 제모습은 찾기 어려웠으나, 문중 사람들이 힘써 묘표석(墓標石)을 찾아 무덤주인공을 확인하였고, 1988년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다.
무덤은 동쪽을 바라보고 남·서·북 3면에 90㎝ 높이로 돌담을 쌓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덮은 구조이다. 무덤칸은 바닥에 움을 파고 나무널을 넣은 뒤 움과 나무널 사이에 판자돌을 세워 덧널을 만들었다.
돌담은 남북과 동서 너비가 490㎝ 안팎으로서 고려 영조척(營造尺)에 따르면 16자 크기이다. 무덤 정면의 돌담 좌우로 집모양을 새긴 문돌[門扉石]을 세우고 무덤 바로 앞에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묘표석을 세웠다. 묘표석에는 ‘駕洛許侍中公(가락허시중공)’ 여섯 글자를 쪼아 새겼는데 돌 겉면이 닳아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묘표석 앞에는 장대석으로 두 단을 지어 놓았고 첫단에 혼유석(魂遊石)과 그 양쪽에 문인석을 마주보게 세워놓았다. 문인석은 얼굴만을 간단히 새 긴 모습으로 동자상을 닮은 고려시대 문인석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껴묻거리[副葬品]는 도굴되어 거의 다 없어졌다. 발굴결과 중국동전, 청자잔, 고려시대 질그릇조각, 무덤의 주인공 것으로 보이는 사람뼈 1점 등이 나왔다. 뼈의 특징으로 보아 어른남자의 엉치뼈임을 알 수 있다.
무덤 주인공 허유전은 1243년(고종 30)에 태어나 충렬왕 때 감찰시사, 감찰대부를 거쳐 1321년 정승에까지 오르고 1323년(충숙왕 11)에 죽었다. 따라서 무덤의 연대는 14세기 전반이며 껴묻거리들의 연대와도 잘 맞는다. 발굴을 마치고 무덤은 원래 모습대로 복원되어 김해허씨 시중공파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