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7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로, 비지정인 128번 고인돌을 제외한 9기가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대촌부락 마을회관 앞에 자리하며 미군부대 전입 등으로 현재 4기만 남아 있다.
받침돌[支石]은 두개의 긴 굄돌만 있는데 방향은 대략 남북이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표면조사가 이루어졌을 뿐 아직 학술적인 발굴조사는 행해지지 않은 유적이다.
이 고인돌 바로 옆에 또 하나의 파괴된 고인돌이 있는데, 굄돌은 없어지고 판석의 뚜껑만 수직으로 엎어진 채 남아 있다. 이 밖에도 강화도에는 삼거리 · 하도리 등지에 북방식과 남방식이 10여 기 남아 있어서 부근리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사회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강화도에 분포한 고인돌의 특징은 대략 5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고려산 · 별립산 · 봉천산 등 산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특히 고려산 일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고려산을 중심으로 90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고, 가장 북쪽의 별립산과 봉천산 일대에 32기가 분포하는 등 강화의 북쪽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둘째, 여러 기의 고인돌이 한 곳에 떼를 이루고 있다. 10여 곳이 넘는 지역에 150여 기가 분포하는데 한 유적에 평균 14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어 분포한다.
셋째, 산의 경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지금의 평지인 곳이 당시에는 바닷가나 갯벌로 되어 있던 지역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탁자식 고인돌 비중이 가장 높다. 탁자식 고인돌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북한 지역보다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다섯째, 굼[星穴]이 만들어져 있는 고인돌의 수가 적다는 점이다. 총 150여 기의 고인돌 중 굼이 만들어진 고인돌이 3기(삼거리 고인돌 등)에 지나지 않는다. 굼은 대개 뚜껑식에서 발견되는데 강화는 대다수가 탁자식이기 때문에 그 수가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