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주여진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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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사건
조선 초기 건주여진을 정벌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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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초기 건주여진을 정벌한 사건.
내용

이 정벌은 조선 정부 단독으로 두 번, 명나라와 함께 한 번을 실행하여 세 차례에 걸쳐 토벌을 감행하였다. 건주여진은 남만주 지방에 살던 여진족을 부르던 말이다.

건주여진은 고려시대에는 명나라에 정복되어 군정(軍政)으로 통치되었다. 1403년(태종 3)에 명나라는 건주위(建州衛)를 설치했으며, 1450년(세종 32)에 건주좌위를 두고, 여진에 대한 회유책을 써왔다.

건주여진은 조선과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면서 화친을 원했는데, 조선에서도 회유책을 썼으나 차차 그들이 오만하게 변방을 침범하자, 태종·세종대에 걸쳐 4군6진을 설치하여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세조 때에 와서는 국내 문제의 어려움과 그들의 요청으로 4군을 철폐하였다. 그런데 이 4군 철폐 이후 여진인은 조선의 서북면을 자주 침범하였다. 이들은 농업을 주로 하여 수렵·목축을 겸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던 부족으로 두만·압록강 북안(北岸) 산간부(山間部)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467년(세조 13) 길주(吉州)에서 이시애(李施愛)의 난 토벌군이 북상했을 때, 마침 명나라는 건주위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하고자 조선에 합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세조는 강순(康純)·어유소(魚有沼)·남이(南怡) 등에 명하여 길주에서 바로 압록강을 건너 건주위의 본거를 치게 하였다.

우참찬 윤필상(尹弼商)을 건주정토군의 총사령관으로 하여 강순을 주장, 어유소·남이를 대장으로 삼았다. 강순·남이가 통솔한 조선군은 압록강을 건너 어유소의 군과 황성평(皇城坪)인 집안현성(集安縣城)에서 합류, 이도(二道)로 갈라져 일제히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총대장인 강순은 어유소·남이를 좌우양익(左右兩翼)의 대장으로 삼아 정병(精兵) 1만을 거느리고 건주위의 본거지인 오미부(吾彌府)로 진격하였다. 이는 제1차 건주출병(建州出兵)이었다. 이 출병은 명나라의 요구대로 진행된 것으로 이를테면 명나라가 공인한 건주정벌이었다.

조선군은 명나라군과 협공하여 불시에 오미부로 돌입, 도독(都督) 이만주(李滿住)·도독동지(都督同知) 이고납합(李古納哈) 부자(父子)를 비롯한 다수의 여진인을 참형(斬刑)하는 전과를 올렸다. 따라서, 조선군의 건주정벌은 짧은 시간에 큰 전과를 올리는 쾌거였다.

물론 이러한 전과는 조선군과 명나라군의 공격력에 힘입은 것이나 여진이 조선군과 명나라군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건주위의 여진인은 전멸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 뒤 1479년(성종 10)에 다시 명나라의 요청에 따라 좌의정 어유소를 주장으로 하여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압록강의 얼음이 녹아 작전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만포진(滿浦鎭)에서 회군하고 말았다.

조정의 논의에서는 모두 회군을 인정했으나, 명나라 요구를 거부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영의정 한명회(韓明澮) 등이 중론을 물리치고 재출정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좌의정 윤필상을 도원수로 하여 김교(金嶠) 등과 함께 병사 4,000여 명이 출정에 나섰다.

윤필상은 압록강을 건너 여진의 본거를 무찔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그 뒤로 건주위는 세력을 점차 확대해갔으며, 뒤에 청나라를 건설하는 누르하치는 이 건주좌위 출신이다.

참고문헌

『세조실록』
『성종실록』
『선조시대녀진교섭사연구』(서병국, 교문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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