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라리 고분군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무지돌덧널무덤 관련 생활유적.

개설

경주시 건천읍에서 영천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4㎞ 정도 가면 동쪽으로 사라리에 이르게 된다. 이 곳은 경주 중심부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15㎞ 정도 떨어져 있다.

내용

유적은 마을 앞의 해발 45m 정도의 나지막한 능선의 여러 갈래에 위치한다. 동북쪽에는 해발 500m에 이르는 높은 산들이 둘러서 있고 서쪽에는 곡간 평야가 길게 이어져 있다.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현,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1995∼1996년의 발굴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장방형 주거지 5동과 원삼국시대로부터 신라에 이르는 목관묘, 목곽묘, 적석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131기를 발굴하였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기시대의 석부, 무문토기를 비롯해 원삼국시대의 청동유물, 철기류, 와질토기류와 삼국시대의 철기류, 토기류 등 660여 점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는 모두 장방형의 수혈주거지로서 바닥면적은 7.5∼9.8평 정도이다. 바닥은 점토와 숯을 깔아 다지거나 점토만을 다진 것도 있다. 벽체는 판자를 조밀하게 세우고 벽면을 따라 주구가 만들어져 있다.

원삼국시대의 목관묘는 7기가 확인되었다. 목곽묘에 비해 상대적으로 묘광이 깊고 규모는 소형이다. 제130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등고선방향과 직교한다. 유물은 조합식 우각형 파수부호, 주머니호 등 이 시기를 대표하는 와질토기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제130호는 부장품의 질과 양에서 다른 무덤과는 큰 차이를 보여 주목된다. 유구는 길이 325cm, 너비 225cm, 깊이 90cm의 장방형 묘광의 내부에 길이 205cm, 너비 80cm의 목관을 설치한 대형급의 목관묘이다. 묘광과 목관 사이에는 칠기 등을 부장한 후 점성이 강한 흙과 작은 깬돌을 함께 채웠다.

목관 바닥에는 7열로 63매의 판상철부를 깔았고 네 모서리에도 1점씩 세워 놓았다. 출토유물은 위치에 따라 목관 상부 봉토 내, 묘광과 목관 사이, 목관 내로 구분된다. 목관 상부 봉토 내에서는 8자형 동기 · 청동고리 · S자형 재갈 · 투겁창과 함께 와질토기가 출토되었다.

묘광과 목관 사이에서는 쇠솥 · 판상철부 · 청동거울 · 칠기류 ·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목관 내에서는 청동검자루가 붙은 세형동검과 철검 · 청동팔찌 · 호랑이모양 띠고리 · 청동거울 · 수정과 유리로 만든 목걸이가 출토되었다. 또한 목관 아래에 마련된 껴묻거리의 구덩이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는 않았으나 유기물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었다.

삼국시대의 유구는 목곽묘와 적석목곽묘가 있다. 목곽묘는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을 이룬다. 이들 중에는 격벽이 있는 것도 있다. 제5호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는 유구와 공반유물의 검토에 의해 5세기대의 자료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당시의 집모양을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제55호에서 철제갑옷, 제65호에서 말투구, 몽고발형 투구 등의 갑옷류가 출토된 것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토기류와 철기류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적석목곽묘는 유구 주위에 반원형의 구가 돌려져 있거나 평면형태가 凸자형으로 부곽을 가진 것도 조사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전형적인 신라토기류와 철기류들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유적은 경주의 외곽에서 확인된 대규모 유적 중의 하나이다. 경주 조양동 유적과 구정동 유적, 금척리고분군, 방내리고분군 등과 함께 신라고분문화연구에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목관묘인 제130호의 구조와 출토유물들은 삼한의 소국인 사로국의 문화수준과 정치 · 사회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신라의 국가형성과정을 밝히는데도 많은 공헌을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 「경주 사라리유적 130호묘에 대하여」(박승규, 『신라문화』 14, 1997)

  • - 「경주사라리유적 발구조사 개보」(하진호, 『신라고고학의 제문제』, 제20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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