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하례하다 [경] 착하다 [경]
부수 心 총획 14
나라 이름 [주] 섬 [주]
부수 巛 총획 6
하느님 [황] 높이다 [황]
부수 白 총획 9
남녘 [남]
부수 十 총획 9
빨리 흐르다 [동] 깊다 [동] 밝다 [통] 환하다 [통]
부수 水 총획 9
효도 [효] 부모를 잘섬기다 [효]
부수 子 총획 7
자식 [자] 동짓달 [자]
부수 子 총획 3
손자 [손] 겸손하다 [손]
부수 子 총획 10
이 [시] 엿보다 [시]
부수 日 총획 10
피다 [양] 나타나다 [양]
부수 手 총획 12
장목을 단 기 [정] 기 [정]
부수 方 총획 11
마을의 문 [려] 스물 다섯 집이 사는 구역 [려]
부수 門 총획 15
비석에 쓰이는 문체 [비] 돌을 세우다 [비]
부수 石 총획 13
- 예술·체육
- 유적
- 국가문화유산
- 명칭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慶州 皇南洞 孝子 孫時揚 旌閭碑)
- 분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소재지 경북 경주시 황남동 240-3번지
-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이완우 (원광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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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고려후기 손시양의 효행에 관해 기록한 정려비. 기록유산.
내용
이 비는 방주형(方柱形)의 석재로 대석과 개석이 없다. 앞면에는 자경(字徑) 30㎝의 해서(楷書)로 ‘孝子里(효자리)’ 3자가 깊게 새겨져 있으며, 뒷면도 해서로 자경(字經) 4.5㎝, 5행 130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각각 3년간 여묘(廬墓)한 손시양의 효행을 동경유수(東京留守) 채정(蔡靖)이 왕에게 올려 마을에 널리 알리게 되었다는 것으로 비문은 채정이 지었다.
이 비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반적인 비의 형식과 달리 방주형으로 석표(石標) 형식을 띤 점이 특색이며, 고려시대 불교관계 이외의 비문으로서 희귀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한국금석전문』중세 하(허흥식 편, 아세아문화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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