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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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인목대비 폐비 논의가 이루어지자 성균관을 떠났으며, 인조반정 이후에 참봉으로 임명되었으나 곧 물러나 은거한 학자.
이칭
  • 달부(達夫)
  • 죽호(竹湖)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제주(濟州)
  • 사망 연도1644년(인조 2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75년(선조 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6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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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인목대비 폐비 논의가 이루어지자 성균관을 떠났으며, 인조반정 이후에 참봉으로 임명되었으나 곧 물러나 은거한 학자.

개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달부(達夫), 호는 죽호(竹湖). 아버지는 성주통판(星州通判) 고현(高晛)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사마시를 거쳐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광해군이 즉위한 뒤 대북(大北) 세력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는 논의를 일으키자 성균관을 떠났다.

인조반정 후 유일(遺逸: 과거를 거치지 않고 높은 관직에 임명될 수 있는 학덕이 높은 선비)로 천거되어 참봉이 제수되었으나 은사(恩謝: 은혜에 감사를 드림)하고 곧 물러나 향리 부안에 은거하여 학문을 닦다가 70세를 일기로 죽었다. 권필(權韠)과 깊이 교유하였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 주1

    : 가계 : : 『만력33년을사증광사마방목(萬曆三十三年乙巳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8]).

  • 주2

    : 생원 급제 : 『만력33년을사증광사마방목(萬曆三十三年乙巳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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