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망자천도굿인 서울 지역 진오기굿의 「말미거리」, 호남 지역 씻김굿의 「오구풀이거리」, 동해안 지역 오구굿 「발원굿」에서 구연되는 장편 서사무가. 지역에 따라 「바리데기」, 「비리데기」라고도 부른다. 원래는 서사무가의 주인공 이름이지만, 최근에는 일반적으로 서사무가 각편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리공주」는 서울 지역에서 부르는 명칭으로, 호남이나 동해안 지역에서는 「바리데기」라 부른다.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천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높이 받드는 의미에서 「바리공주」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100여 편의 각편이 채록 · 보고되어 있어 전승 양상을 알 수 있다.
지역에 따라 편별로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인 서사 단락은 동일하다. 1) 바리공주 부모가 혼인을 한다. 2) 바리공주 부모가 연이어 딸을 낳는다. 3) 일곱 번째도 공주를 낳는다. 4) 바리공주가 버림을 받는다. 5) 바리공주 부모가 병에 걸린다. 6) 바리공주 부모의 병에 필요한 약이 약수임을 알게 된다. 7) 바리공주가 부모를 만난다. 8) 여섯 딸들에게 부탁하지만 딸들은 모두 핑계를 대고 거절한다. 9) 바리공주가 약수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 10) 바리공주가 약수를 지키는 이를 만난다. 11) 바리공주는 약수를 얻기 위해 일정한 대가를 행한다. 12) 바리공주가 부모를 살려낸다. 13) 바리공주가 부모를 살린 공을 인정받는다. 이것이 「바리공주」 무가의 기본 내용이다.
「바리공주」 무가는 전국적인 전승 양상을 보이는 서사무가이다. 따라서 각편의 서사 단락 분석을 통해 무가권 구획이 가능하다. 현재 이루어진 무가권 구획이 ‘무당의 유형’, ‘무속 음악권’과 일치하는 점에서 「바리공주」 무가의 전승이 무당과 음악이라는 무속의 큰 틀과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
「바리공주」 무가는 지역별로 세부적인 단락에서 차이를 보인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리공주」 무가는 크게 북한본, 중서부본, 동해안본, 호남본 등으로 나뉜다. 북한 지역에서는 바리공주의 부모가 하늘에서 땅으로 귀양 온 것으로 나타나며, 자식을 낳지 못한 바리공주 부모가 자식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장면과 약수를 구해 온 바리공주가 죽는 장면이 있어서 내용에 차이가 있다. 또한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바리공주의 위상이 약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편 서울 · 경기 · 충청도가 속해 있는 중서부 지역은 바리공주의 여섯 언니가 태어나는 장면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점, 바리공주를 구해 주는 인물로 ‘비리공덕 할아범’과 ‘비리공덕 할멈’이 등장하는 점, 약수 지킴이로 ‘무장승’을 만나 천생 배필이 되는 점 등이 특징이다. 이러한 중서부본의 모습은 제의성(祭儀性)을 강하게 드러내는 이본으로,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바리공주의 모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동해안본은 오락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단락이 발달되어 있다. 약수 지킴이로 ‘동수자’가 등장하는 장면, 남장(男裝)을 하고 약수를 구하러 간 바리공주를 여성으로 눈치챈 동수자가 여러 차례 바리공주의 여성 신분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장면, 약수탕에 가서 바리공주가 약수를 구해 오는 장면 등에서 유희적 면모가 명확하게 보인다. 특히 바리공주 부모가 일곱 딸을 낳는 과정에서 성적인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여 오락성과 놀이성을 강하게 내비친다.
호남 지역은 지역별로 세부 단락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하위 권역을 설정할 수도 있다. 약수를 구하러 갈 때 여느 지역과 달리 남장을 하지 않으며, 약수를 구해 돌아온 이후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이러한 각 무가권 이본의 특징을 바탕으로 「바리공주」 무가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고찰하면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천도굿에 설화 및 신모(神母)신화의 영향을 받아 「바리공주」 무가 기본형이 성립되고, 여기에서 다시 제의축과 놀이축이 강조되는 쪽으로 무가가 발달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제의축이 강조된 「바리공주」 무가는 주로 중서부 지역 무가권에 분포되어 있으며, 궁중의 무속 수용과 함께 엄숙성을 유지하며 발달해 갔다. 놀이축이 발달한 동해안 경상도 지역의 「바리공주」 무가는 장편화 경향을 띠며 전개되어 갔다. 이에 따라 제의성에 충실하면서 망자천도굿의 목적을 명확히 드러내는 중서부본이 기본형이고, 호남본은 축소형, 동해안본은 놀이성에 맞춘 확장형, 북한본은 결말 부분에서 바리공주가 죽는다는 점에서 변이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바리공주」 무가에는 한국인의 내세관, 영혼관, 저승관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저승과 현실이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공간 관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느 서사문학과 달리 「바리공주」 무가에서는 지옥이 수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일상세계에서 수평으로 이동하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지옥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버림받은 딸이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있어 한국인의 효(孝) 관념이 드러나며, 효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심청과 다른 의식이 담겨 있다. 심청이 왕후가 된 다음에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찾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약수를 구해 온 바리공주가 부모의 상여를 보고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달려가는 모습에는 혼인으로 이루어진 가족관계보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의식이 드러난다.
「바리공주」 무가의 서사 단락이 전개됨에 따라 공간은 궁궐에서부터 산중과 그리고 바리공주를 버리는 장소인 황천강으로 확장되고 마침내 비일상적 공간인 지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또 공간 확장과 함께 문제가 새롭게 발생하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오구대왕이 자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계속 딸을 낳음으로써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바리공주를 버림으로써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여 마침내 누군가가 약수를 구해 와야만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바리공주는 서천 서역국으로 떠나가는 제의적인 죽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서천 서역국은 일상의 시간 질서가 소거되고 비일상적인 시간 질서로 대체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러한 문제는 바리공주가 비일상적 공간인 서천 서역국에서 약수를 구해옴으로써 해결된다. 이러한 구조는 존재의 근원을 비일상적 세계(카오스)에 두고 있는 원본 사고에 기반을 둔 것이다.
또한 「바리공주」 무가는 사건의 진행과 동시에 바리공주가 사건 진행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으며, 특히 혼인으로 맺은 가족관계보다는 태어나면서 맺은 혈연관계를 우선시 하는 모습은 특징적이다. 그리고 바리공주의 결말 부분에 재생을 축원하는 사설은 바리공주가 죽음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드러낸다. 「바리공주」 무가에는 남성 중심적 사고 방식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및 한계가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욕망과 한계는 여성이 지니고 있는 모성적 가치로 표현되어 신모신화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으며,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여성이 겪는 고난을 표현한 여성 수난담의 전통을 문학사에 나타나게 했다.
한편 바리공주는 다양한 콘텐츠로 재활용되고 있다. 여러 편의 동화로 개작 · 창작되었으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웹툰으로도 여러 차례 제작되었고 기본 구조를 차용하여 현대적으로 변개한 황석영의 「바리공주」로도 재창작되는 등 한국 문화의 원형 소재로 의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