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2대명절의 하나인 팔관회(八關會)에는 송나라·여진·탐라·일본·아라비아 상인들이 와서 공물(貢物)을 바치는 형식으로 국제무역이 이루어졌는데, 이 공물을 바치는 것을 놀이로 꾸민 것이 공물바치기놀이이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165년(의종 19) 4월 좌우번(左右番) 내시들이 경연으로 공물바치기놀이를 하였는데, 그 때 우번에는 귀족자제들이 많아 벼슬아치들을 통하여 공사의 진완물(珍玩物)과 서화들을 모으고, 채붕(綵棚)을 맺고 잡기(雜伎)를 실어 이국인이 공물을 바치는 모양으로 꾸며, 왕에게 청홍의 일산 두 자루와 준마 두 필을 바쳤다.
좌번은 모두 유사(儒士)였으므로 잡희에 익숙하지 못하여 백의 하나도 우번에는 당하지 못하는지라, 우번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남의 준마 다섯필을 빌려 바쳤더니 왕이 이것을 모두 받고 좌번에게는 백은(白銀) 10근과 단사(丹絲) 65근을, 우번에게는 백은 10근과 단사 95근을 하사하였다.
그 뒤 좌번은 말값을 갚지 못하여 날마다 빚 독촉을 받으니 사람들이 이를 비웃었다 한다. 이것은 그 전부터 전래한 배우들의 놀이를 귀족자제들이나 선비들이 모방하여 논 것 같다. 이것으로 미루어 당시(12세기 중엽)에 이미 우희(優戱)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