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미상의 『지양만록(芝陽漫錄)』에 전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이 심기가 불편하여 소일삼아 창우희(倡優戱)를 구경하였는데, 배우가 「도목정사놀이」, 즉 벼슬아치의 성적을 평가하여 벼슬을 떼거나 더 좋은 데로 승진시키거나 하던 일을 놀이로 보였다.
이조판서가 휘장을 들고 병조판서에게 글도 못하고 무예도 못한 조카 일을 부탁하자, 병조판서가 눈을 꿈뻑이고 웃으며 응낙한다.
조금 뒤 병조판서가 휘장을 들고 이조판서에게 무능한 셋째사위 일을 부탁하자 이조판서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소. 내 조카나 당신 사위나 좋게 합시다.” 하자, 병조판서가 크게 웃으며 “서로 맞바꾸는 일이 뭐 힘들겠습니까?”하고 정실을 쓰는 내용을 폭로하자, 왕이 크게 웃었다고 한다.
당시 조희(調戱)로서 전문배우의 놀이가 사회풍자 기능까지 보여주었음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