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해전고(寶源解典庫)와 관련이 있는 관부였다. 1373년(공민왕 22) 왕이 노국공주(魯國公主)의 능인 정릉(正陵)과 혼전(魂殿)인 인희전(仁熙殿)에 설치하였다.
이 두 공판도감에는 경제적인 비축이 적지 않았고, 또한 그 재원을 바탕으로 하여 식리(殖利)를 하고 있었으므로 백성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그 곳에는 보(寶)가 설치되어 있고, 그 보의 미곡을 대여하였는데 미곡을 빌린 자들은 처자를 팔아서도 상환할 수 없어서 패가망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결과 1391년(공양왕 3) 그와 비슷한 여러 관부들과 함께 혁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