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운거(雲擧) 또는 숙우(叔羽), 호는 타우(打愚). 아버지는 이유겸(李有謙)이다. 송시열(宋時烈)을 통하여 김집(金集)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1658년(효종 9) 박세채(朴世采)·윤증(尹拯)과 함께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자의에 임명된 뒤, 산림직(山林職) 진선을 역임하였으며, 1661년(현종 2) 이후 지평을 비롯한 장령·집의 등의 사헌부 관직을 맡기도 하였다.
현종 말년의 예송(禮訟)에서 남인인 허적(許積)을 탄핵하다가 실세하였으나,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김수항(金壽恒)의 천거로 재등용되었다. 1681년에 사업이 되고, 그뒤 형조참의·우윤·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숙종연간에 노론과 소론이 분기할 때에는 송시열을 따라 노론의 편에 서서, 남인의 등용을 주장하는 소론의 주장을 반대하였다.
1688년 이조참판으로 있을 때 먼 친척 유두성(柳斗星)의 음행사건을 고발하였으나 증인을 교사하고 재산을 탐냈다는 죄로 처벌받고,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실세한 뒤인 1690년 옥사하였다. 1717년 서인들의 두호로 복관되었으며, 이조판서를 증직받았다. 전의의 뇌암서원(雷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