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유원(惟遠). 강의(姜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몽서(姜夢瑞)이며, 아버지는 현감 강효윤(姜孝胤)이다.
1616년(광해군 8) 익위(翊衛)의 신분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다음해 예조좌랑과 장악원첨정을 거쳐서 장령에 올랐다.
1618년까지 장령으로 재직하면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를 앞장서서 주장하고, 이에 반대하는 이항복(李恒福)을 탄핵하는 등 이이첨(李爾瞻)을 중심으로 한 대북세력의 정책을 정계 일선에서 추진하였다. 또 같은 북인출신이면서 이이첨 등에 맞서는 기자헌(奇自獻)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1618년 사예 · 예빈시정을 거쳐, 1621년 겸필선이 되고, 그 뒤 집의에까지 승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직후 폐모론 주장의 죄목으로 위리안치되었으며, 1625년과 1627년에 석방명령이 내렸지만 언관의 반대로 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