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보(晦甫). 할아버지는 김윤효(金允孝)이고, 아버지는 김계종(金繼宗)이며, 어머니는 이대권(李大拳)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1년 겸설서를 거쳐 다음 해 정언이 되었다.
그해에 모호한 근거로 김진(金搢)을 탄핵하여 파직당하였다. 1614년 다시 정언으로 서용되었으며, 옥당록에 오르고, 겸문학·지평으로 옮겼다. 이때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에 찬성하고, 그에 반대하는 기자헌(奇自獻)을 탄핵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목대비에게 예를 갖춘다고 공격받았으며, 또 폐비의 절차를 맡지 않으려 하였다는 이유로 온성판관(穩城判官)으로 좌천당하였다. 1621년 수찬에 임명되었으나,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도망하여 숨었다. 1631년 폐모논의를 일으켰다는 혐의로 장살(杖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