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계숙(啓叔). 김사원(金士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응무(金應武)이며, 아버지는 우의정 김귀영(金貴榮)이다.
처음에는 무반으로 출사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이 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알성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14년 예조참의, 이듬해 동부승지·우부승지 등을 거쳐, 1617년 좌윤에 올랐다.
1614년에는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중건작업에 참여하였으며, 1615년에는 문신정시(文臣庭試)에서 높은 성적으로 상을 받았다. 허균(許筠)의 심복으로서, 1617년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를 앞장서서 주장하고, 그 여론을 일으키는 공작을 담당하였다.
1618년 허균이 역모의 혐의를 받고 처형당할 때 심문을 받다 장살(杖殺)되었다. 1678년(숙종 4) 결정적인 단서 없이 죽었다는 김석주(金錫胄)의 주장에 의하여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