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교리, 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후 광해군 말년까지 사헌부장령, 겸필선 · 교리 등의 관직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617년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논의가 일어나자 이 논의에 참여하여 찬성하였고, 폐모를 단행할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다.
또,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당한 뒤에도 그 궁의 규모를 줄이라고 건의하는 등, 대북세력의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직후 이이첨(李爾瞻)의 무리로 지목되어 파직된 뒤 중도부처(中道付處: 유배자의 평소 공로 등을 감안하여 유배지로 가는 중간지점의 한 곳을 지정하여 머물러있게 하던 제도)되었다.
1628년(인조 6) 대북세력의 잔당이 유효립(柳孝立)을 중심으로 역모를 꾀한 것에 연루되어 죽었다. 광해군 초년에 예조정랑으로서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9년에는 민생의 어려움을 적절히 지적하는 소를 올렸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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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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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생원 급제 : 『만력31년계묘식년사마방목(萬曆三十一年癸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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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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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폐모논의 참여 : 광해군일기[중초본]121권, 1617년(광해 9) 11월 25일. "폐비 문제에 대한 상소를 의정부에서 논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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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선조실록 편찬 참여 : 선조실록 1권, 편수관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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