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정부(挺夫). 곽순충(郭純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곽율(郭慄)이고, 아버지는 곽호선(郭好善)이며, 어머니는 권보(權輔)의 딸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뒤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07년 함경도평사(咸鏡道評事)로 나아갔다. 1617년(광해군 9) 장령·부교리를 거쳐 세자시강원필선이 되었으며, 이듬해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
이후 광해군 말년까지 사헌부장령, 겸필선·교리 등의 관직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617년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논의가 일어나자 이 논의에 참여하여 찬성하였고, 폐모를 단행할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다.
또,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당한 뒤에도 그 궁의 규모를 줄이라고 건의하는 등, 대북세력의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직후 이이첨(李爾瞻)의 무리로 지목되어 파직된 뒤 중도부처(中道付處: 유배자의 평소 공로 등을 감안하여 유배지로 가는 중간지점의 한 곳을 지정하여 머물러있게 하던 제도)되었다.
1628년(인조 6) 대북세력의 잔당이 유효립(柳孝立)을 중심으로 역모를 꾀한 것에 연루되어 죽었다. 광해군 초년에 예조정랑으로서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9년에는 민생의 어려움을 적절히 지적하는 소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