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당시 의욕적으로 북벌정책(北伐政策)을 추진하고 있던 효종은, 서인 산림(山林)으로 정국에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이조판서 송시열과 단 둘이 국정에 관해 논의하였다. 사관과 승지까지도 내보낸 채 이루어진 독대는 제도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것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3월 11일의 대화 내용을 그 이튿날 기록한 것으로 이 책이 제작된 경위나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이 책과 같은 내용이 『송자대전(宋子大全)』의 「송서습유(宋書拾遺)」에 ‘악대설화(幄對說話)’라는 제목으로 들어 있다. 규장각본의 경우 서문·발문 등이 없고 모두 17면으로 구성된 간단한 책이다.
첫 머리에 독대의 경위를 간단히 서술한 뒤 국정에 대한 대화 내용을 실었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북벌,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인 강빈(姜嬪)의 옥사와 그것을 거론하다 죽은 김홍욱(金弘郁)의 신원에 대한 것 등이었다.
효종은 양병(養兵)에 치중한 북벌 방책을 토로했으며, 송시열은 원칙론을 내세워 격치성정(格致誠正)과 양민(養民)을 강조하였다. 또한 당시 중요 인물들의 북벌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였다. 그리고 송시열은 공론임을 내세워 이이·성혼의 문묘종사와 강빈·김홍욱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였다.
당시의 정치 운영과 송시열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사관까지도 내보낸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송시열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기록한 것이므로, 사실과 달리 기록되었을 수도 있으며 송시열 쪽으로 치우치게 기술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비슷한 성격의 기록들로는 이 밖에 효종과 송시열 사이의 밀찰(密札)·밀교(密敎) 등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