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초명은 기수격(奇秀格), 자는 붕만(鵬萬). 한성판윤 기대항(奇大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기응세(奇應世)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기자헌(奇自獻)이며, 어머니는 종실 하원군(河原君) 이정(李鋥)의 딸이다. 유희분(柳希奮)과도 인척관계에 있었다. 형이 해남 현감 기순격(奇順格)이다.
1615년(광해군 7)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알성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17년 정언·병조좌랑·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이해에 허균(許筠)이 역모를 꾀한다고 상소하여 다음 해에 처형하게 하였으나, 고변을 늦게 하였다는 죄목으로 자신도 강릉에 유배당하였다. 1621년 사서에 서용되고, 병조좌랑으로 옮겼다. 북인에 속하지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에 찬성하지 않았다.
인조반정 후 남의 문장으로 응시하였다 하여 과거합격이 취소되었으며, 허균의 역모를 고발한 상소에 인목대비와 그 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을 배척한 내용이 있다고 공격받았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에 내응하려 하였다는 혐의로 사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