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정랑, 봉직랑, 익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윤휴(尹鑴)의 천거로 형조좌랑에 이어 공조정랑을 지냈으며, 1676년에 봉직랑(奉直郎)으로서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고 익산군수로 나아가 치적을 올렸다.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허적(許積) · 윤휴 등이 사사되자, 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풀려나온 지 2년 만에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무위당유고(无爲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무위당유고(无爲堂遺稿)』
- 『숙종실록(肅宗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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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곽세건 상소 : 숙종실록1권, 1674년(숙종 즉위년) 9월 25일. "유생 곽세건이 송시열에게 지문을 지어 올리도록 내린 명을 거두어 달라는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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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옹원봉사 제수 : 숙종실록2권, 1675년(숙종 1) 2월 15일. "최문식을 집의로·우창적을 장령으로·곽세건을 사옹 봉사로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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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곽세건 저술 : 무위재집(无爲齋集)(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奎中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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