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세건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공조정랑, 봉직랑, 익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가(公可)
  • 무위자(无爲子)
인물/전통 인물
  • 본관현풍(玄風)
  • 사망 연도1686년(숙종 1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공조정랑|봉직랑|익산군수
  • 출생 연도1618년(광해 10)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용규 (단국대학교, 한문학)
  • 최종수정 2025년 06월 05일
곽세건의 무위자유집 중 권수면 미디어 정보

곽세건의 무위자유집 중 권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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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정랑, 봉직랑, 익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공가(公可), 호는 무위자(无爲子). 허목(許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일찍이 무예를 익혔으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였고, 허목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고 인정을 받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분의(奮義)하여 서울로 올라갔으나, 화의의 소식을 듣고 중지하였다. 숙종이 즉위하여 현종릉지문(顯宗陵誌文)을 송시열(宋時烈)에게 짓게 하자 그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1675년(숙종 1)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에 특임되었으나 사양하였고, 그 뒤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가 되었다.

윤휴(尹鑴)의 천거로 형조좌랑에 이어 공조정랑을 지냈으며, 1676년에 봉직랑(奉直郎)으로서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고 익산군수로 나아가 치적을 올렸다.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허적(許積) · 윤휴 등이 사사되자, 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풀려나온 지 2년 만에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무위당유고(无爲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 『무위당유고(无爲堂遺稿)』

  • - 『숙종실록(肅宗實錄)』

주석

  • 주1

    : 곽세건 상소 : 숙종실록1권, 1674년(숙종 즉위년) 9월 25일. "유생 곽세건이 송시열에게 지문을 지어 올리도록 내린 명을 거두어 달라는 상소"

  • 주2

    : 사옹원봉사 제수 : 숙종실록2권, 1675년(숙종 1) 2월 15일. "최문식을 집의로·우창적을 장령으로·곽세건을 사옹 봉사로 제수하다"

  • 주3

    : 곽세건 저술 : 무위재집(无爲齋集)(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奎中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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