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고종 32)에 입국한 미국의 남감리회 선교사 리드(Reid, C.F.)는 1896년 8월 중국연회 조선지방 장로사(長老司:현 감리사)로 임명되어 1897년에 경기도 고양읍에 교회를 설립하였고, 선교부에서 조선선교처가 분립되자 관리자로 임명되어 그 해 6월 21일 일요일에 사택에서 처음으로 공중예배를 열고 윤치호(尹致昊)가 설교를 했는데, 이것이 광희문교회의 시발이 되었다.
그 해 9월 10일에 제1회 조선지방회가 광희문교회의 산실인 선교사 리드의 사택에서 열려 서울구역과 개성구역으로 나뉘고, 교회건립을 위해 사두었던 가옥을 수리하여 교회건물로 사용함으로써 그 뒤 서울의 선교 사업이 이 교회를 기지로 해서 전개되었다.
교세가 점차 늘어나자 1904년 10월에 띠꿀(지금의 五壯洞)로 이전하여 교회명을 일명 수구문교회라고 불렀고, 1916년광희동에 대지 400평을 구입해서 양옥 2층의 교회를 건축하고, 1924년 이후 부터 ‘광희문교회’로 불렀다.
교회건물이 준공되자 청소년교육을 통해 선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1911년에 광희문여학교를 설립하였는데, 그 뒤에 배명중고등학교(培明中高等學校)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족 항일기 말기에 종교탄압이 심해지면서 1942년 3월에 담임목사인 전효배(田斅培)가 검거되고, 광희문교회는 폐쇄되어 동대문교회로 병합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교회재건을 위한 교인들의 노력에 의해, 1956년신당동에 2백 평 규모의 교회건물을 신축하여 1995년까지 사용하다 1996년 교회를 다시 신축했다.
현재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교회로서, 광희문교회는 국내 미자립교회 선교비 지원, 해외 선교사 파송 등의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