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군 ()

대동여지도 / 남원, 구례
대동여지도 / 남원, 구례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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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경상남도 하동군, 서쪽은 곡성군, 남쪽은 순천시와 광양시 북쪽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22'∼127°37', 북위 35°05’∼35°21’에 위치한다. 면적은 443.20㎢이고, 인구는 2만 730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7개 면, 152개 행정리(69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봉남리에 있다.

자연환경

지세는 소백산맥의 줄기를 이루는 지리산(1,915m)이 북동부에 솟아 있으며, 동쪽에는 지리산(智異山)의 지봉인 노고단(老姑壇, 1,507m) · 반야봉(般若峰, 1,751m) · 황장산(黃獐山, 942m) 등이, 북쪽에는 만복대(萬福臺, 1,433m) · 견두산(犬頭山, 775m)이, 서쪽에는 천마산(天馬山,656m) · 깃대봉(691m) 등이, 그리고 남쪽에는 도솔봉(1,123) · 형제봉(兄弟峰, 861m)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의 지역이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그 중앙부에 사방으로 산지에 둘러싸인 구례분지가 있어 주요 생산지를 이룬다. 구례읍 시가지의 동남쪽에 인접한 곳에는 봉성산(鳳城山)이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봉동(鳳東) · 봉서(鳳西) · 봉남(鳳南) · 봉북(鳳北) 등의 마을이 명명되었다.

서시천(西施川)이 중앙천을 남류하다가 섬진강에 합류한다. 또한, 서시천 상류에는 산동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노고단 부근에는 평탄면이 발달하여 노고단 고원을 이루어 여름철에 피서객이 많이 모인다. 노고단에서 발원한 광의천(光義川)과 마산천(馬山川)은 깊은 계곡을 이루고, 광의면 방광리와 마산면 서촌리를 선정으로 하는 선상지(扇狀地)모양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감로천(甘露川)은 광의면 방광리의 천은사계곡을 흐르는 계곡천으로 계곡물이 깨끗하고 물맛이 좋아 여름철에는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서시천(西施川)은 섬진강의 제1지류의 하나이고, 군의 북쪽의 산동면 위안리에서 발원하여 군을 남북으로 종관, 남류하다가 하류에 이르러서는 구례읍의 동쪽을 흐른다.

기후는 우리나라 남쪽에 위치하나 산간 내륙지방이므로 기온차가 비교적 심한 특성이 나타난다. 연평균기온 12.3℃, 1월 평균기온 -2.6℃, 8월 평균기온 23.9℃이며, 연강수량은 1,689㎜로 우리나라 다우지역의 일부를 이룬다.

역사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적 ·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물 · 유적으로는 구례읍 · 광의면 · 마산면 · 토지면 등에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그 하부 구조에서 간돌칼 · 돌도끼 등이 출토되어 일찍부터 인류가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한의 제소국 중 구례지역으로 비정되는 국가는 없다.

백제의 영역에 포함된 뒤 구차례현(仇次禮縣)이라 불렸고, 신라의 통일 이후 구례현으로 개칭되어, 곡성군의 영현으로 되었다. 구례의 토지면 송정리에 있는 석주관(石柱關)은 마한과 진한의 경계라고 하며, 또 백제와 신라의 경계라고 전해오는 곳이다. 신라 때는 지리산을 오악의 하나로 하여 국제(國祭)를 지냈다.

한편, 화엄사는 승 연기(烟氣, 혹은 緣起)가 544년(진흥왕 5)에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연대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화엄신앙의 한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화엄사의 창건과 거의 같은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연곡사(鷰谷寺)가 있다.

초기에는 남원부에 속했다가 1143년(인종 21)에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비로소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말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석주관에 성을 쌓았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파견되었고, 세조 때 순천진관에 소속되었다. 1499년(연산군 5)에 현인 배목인(裵目仁) · 문빈(文彬) 등이 역모를 꾀한 일이 있어 폐하여 유곡부곡(楡谷部曲)으로 삼아 남원에 소속시켰다가 1507년(중종 2)에 다시 현으로 복구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가옥수 137호, 인구 677인이며, 1592년(선조 25)에는 남원부의 좌영에 소속되었다.

임진왜란 때 곽영(郭嶸)이 석주관에 축성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왜군의 진격로에 해당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이 때 수백의 의병이 전사하였다. 이 때 순절한 7인의 의사를 기리는 칠의단(七義壇)이 1868년(고종 5)에 건립되었다. 1703년(숙종 23)에는 화엄사의 각황전(覺皇殿)이 세워졌고, 1714년에는 군영이 운봉으로 옮겼다.

1895년의 관제개혁 때 남원부 소속의 구례군이 되었다가 이듬해의 재개편 때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남원의 신구면 · 중방면 · 손의면 · 고달면 등 4개 면이 이속되어 12개 면이 관할구역으로 되었다.

1906년 담양의 의병장 고광순(高光洵)이 구례와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약하다가 연곡사에서 순절하였다. 또 유병기(劉秉淇)는 광주의 김태원, 광양의 백낙구(白樂九) 등과 함께 활약하였다. 1908년 황현(黃玹)은 광의면 방광리에 호양학교(壺陽學校)를 세워 교육에 힘쓰다가 1910년 경술국치의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그의 저서 『매천야록(梅泉野錄)』은 귀중한 사서로 평가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달면이 곡성군에 이관되었으며, 구례 · 간문 · 토지 · 마산 · 광의 · 용방 · 외산 · 내산의 8면 69개 리로 개편되었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박경현(朴敬鉉)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어 1932년에는 외산 · 내산면이 합해져 산동면으로 되었다.

1946년 간문면(艮文面)을 전처럼 간전면(艮田面)과 문척면(文尺面)으로 분리시켰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과 1950년의 6·25사변을 거치면서 공비들이 지리산일대에 은거하여 준동함으로써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다. 1963년에는 구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 · 유적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문척면 월전리에 지석묘와 구례죽마리지석묘군, 토지면 구산리의 지석묘를 비롯하여 1백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마산면 냉천리에서는 돌도끼가 출토되었다. 구례죽마리지석묘군은 1990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산성으로는 토지면 송정리에 석주관성(사적, 1993년 지정)이 있으며 산성지로는 마봉산성지 · 봉성산성 · 행유산성지가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마산면 황전리에 화엄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토지면 내동리에 연곡사, 광의면 방광리에 천은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화엄사에는 화엄사각황전(국보, 1990년 지정 제67호) · 화엄사각황전앞석등(국보, 1962년 지정) ·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 · 화엄사동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제133호) · 화엄사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 ·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1963년 지정) · 구례화엄사화엄석경(보물, 1990년 지정) ·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1997년 지정) · 화엄사보제루 · 구층암석등 등이 있다. 화엄사보제루는 197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구층암석등은 1986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연곡사에는 구례 연곡사 동 승탑(국보, 1962년 지정) · 연곡사북부도(국보, 1962년 지정) · 연곡사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연곡사현각선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 ·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보물, 1963년 지정) ·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1963년 지정)가 있다.

천은사에는 천은사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보물, 1987년 지정), 천은사나옹화상원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 천은사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등이 있다.

그 밖에 문척면 죽마리에는 원효 · 도선 · 진각 · 의상이 수도하였다는 사성암(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구례읍 논곡리삼층석탑(보물, 1969년 지정), 마산면에 구례사도리삼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및 구례사도리석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문척면 죽마리 마애여래좌상 · 상곡사지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문척면에 월전리입석(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토지면에 구산리입석(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광의면에 구례대전리석불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94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구례읍 봉서리에 구례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와 광의면 수월리에 매천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마산면 황전리에 남악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오봉정사 등이 있다.

그 밖에 산동면 이평리의 윤문효공신도비(보물, 1975년 지정)와 구례윤문효공묘전석등 및 석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토지면 송정리에 임진왜란 때 전사한 7인을 모신 석주관칠의사묘(사적, 1963년 지정), 산동면 시상리에 운흥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좌사리에 방호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그리고 산동면 원촌리에 김완장군전승유허비(전라남도 기념물, 1981년 지정) 등이 있다.

국가무형유산으로는 구례읍에 향제줄풍류가 있고,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는 토지면 오미리에 구례운조루(중요민속자료, 1968년 지정)가 있다. 향제줄풍류는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 천연기념물로는 화엄사의 올벚나무(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가 있고, 노거수로는 간전면 흥대리와 마산면 냉천리의 느티나무, 문척면 죽마리의 팽나무가 있으며, 마산면 황전리에는 구례장죽전녹차시배지(전라남도 기념물, 1991년 지정)가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구례읍 봉서리의 구례향교와 죽연서원(竹淵書院)이 있다. 구례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되며, 1518년(중종 13)에 구례현 백련동(白蓮洞) 서북쪽에 새 향교가 중건되어 옮겨졌다가 1704년에 봉성산 서응봉(西鷹峰) 아래의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 죽연서원은 1797년(정조 21) 유림들에 의하여 문척면 죽연리에 설립되었으나 고종 때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철폐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7년 7월에 사립양학교가 방광면에 설립되었으며, 1908년 구례읍에 사립 봉양학교(鳳陽學校)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 왕수환(王粹煥) · 권홍수(權鴻洙) 등에 의하여 일양학교(壹陽學校)가 설립되어 국권회복을 위한 인재양성에 힘썼으나, 1911년 「조선교육령」 공포에 의하여 학제가 정비되면서 이들 학교는 일제에 의해 공립학교로 전환되었다. 이 밖에도 1904년에 화엄사에서 사립 신명학교(新明學校)가 설립하고, 진진응(陳震應) · 왕경환(王京煥) 등이 교육진흥에 노력했으나, 곧 폐교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1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공도서관과 공연장이 1개씩 있으며, 향토문화행사인 지리산약수제가 해마다 개최되어 지역사회 문화 창조에 기여하고 있다.

민속

이 지방에는 일반적인 세시민속놀이와 문척면에서 정월 보름에 하는 농악놀이 외에 특별한 놀이가 없다.

지리산 주변의 각 고을에서 행해지는 향토문화행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구례의 지리산약수제인데, 그 기원이 매우 오래이고 규모가 커서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해마다 곡우절이 되면 지리산신을 모시는 노고단에서 세화연풍과 국태민안을 비는 제사가 올려진다. 이 제의(祭儀)의 유래는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오악(五岳) 중 남악(南岳)에 해당되는 지리산에서는 곡우제(穀雨祭)를 올려 그 해의 풍작과 백성의 안녕을 빌었다.

이 때 근처 주민은 물론이고 각처의 화랑들이 참가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궁도 · 씨름대회 등도 곁들여졌다고 전한다. 이 곡우제는 지리산 신사(神祠)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고려와 조선에 와서는 남악사로 불렸다. 민족항일기와 6·25사변을 전후하여 일시 중단되었다가 1962년부터 약수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다시 부활되어 이어지고 있다.

약수제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곡우 무렵 지리산일대에 자생하는 자작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마시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수액은 나무에 상처를 내어 받아내는데 부유스름하고 달콤하며, 이뇨와 골절에 유효하다고 한다. 제례의 형식은 보통의 산신제와 다르지 않다.

한편, 구례지방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유명한 술의 한 가지로 죽력고(竹瀝膏)가 있는데, 이것은 푸른 대를 숯불 위에 얹어 뽑아낸 수액을 섞어 고아낸 술이다. 그 맛과 향취가 독특하고, 특히 신경통 등에 주효하다고 전한다.

설화 · 민요

이 지방의 유명한 사찰인 화엄사의 각황전 복원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이 복원에 필요한 시주를 구할 사람을 정하기 위하여, 커다란 항아리에 밀가루와 엿을 넣어놓고 차례로 엿을 꺼내게 하되, 손에 밀가루를 묻히지 않은 사람을 뽑기로 하였다. 매월이라는 중이 엿을 꺼내는데, 그의 손에는 밀가루가 전혀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선택되었다.

매월이 탁발을 떠나기 전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반드시 첫 번째 만나는 사람에게서 시주를 받으라고 하였다. 매월이 꿈을 깨고 길을 떠나 처음 만난 사람은 아랫마을의 가난한 벙어리 노인이었다. 매월이 시주를 청하자 노인은 계곡의 물에 뛰어들어 자신의 목숨을 시주하였다. 그 뒤 8년의 세월을 탁발하며 헤매다가 당나라에까지 가게 된 매월은 어느 날 길가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당나라의 황자로서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였는데, 매월을 만나자마자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전후의 사연을 다 들은 황제는 그 벙어리 노인이 자신의 아들로 환생한 것이라 하고 많은 시주를 하였다. 이렇게 매월이 당나라 황제를 깨우쳐준 뒤 중건되었다 하여 ‘각황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한다.

또 원효가 화엄사의 사성암에서 불도를 닦고 있는데 어머니가 병이 들었다. 그가 지성으로 어머니의 쾌차를 비는 불공을 드리는데, 어느 날 꿈에 천도(天桃)를 구해드리면 낫는다는 부처님의 계시를 들었다. 그는 동생인 혜공으로 하여금 천국에 가서 천도를 구해오도록 하여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 병이 나은 어머니는 어느 날 잠에서 깬 뒤, 강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짜증을 냈다.

원효가 섬진강변으로 달려가 기도를 드리니 강물소리가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원효가 모아진 물소리를 오산 밑에 가두었기 때문에 섬진강물은 잠자듯 고요해졌고, 그 뒤 이곳을 잔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감로사의 구렁이를 잡아죽였기 때문에 샘물 줄기가 끊겨 천은사로 바뀌게 되었다는 전설, 도선이 부처님으로부터 산수지리를 배웠다는 「사도촌전설」, 윤효원이라는 효자 때문에 샘물이 따뜻하여졌다는 「온두동전설」, 태고 때 성모 마고할미가 반야도사와 혼인한 뒤 딸 여덟을 낳아서 모두 무당이 되게 하였다는 지리산에 얽힌 전설 등이 있다.

이 지방의 민요는 전라도의 다른 지방과 같이 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전해지고 있다. 모를 심을 때는 다른 지방과 같이 「상사소리」를 한다. 상사소리는 3분박 4박자로 중모리장단에 맞으며 선소리꾼이 두 장단을 메기면 일꾼들이 “어여 어허여루 상사뒤여.”하고 같은 장단에 받는다. 선율은 육자배기토리로 「농부가」로 알려진 민요이다. 논을 매면서는 논매기소리가 따로 있지 않고, 모심기에 부르는 「상사소리」나 「산타령」이라고 하는 육자배기선율의 소리를 한다.

또한,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면서는 「상여소리」를 부르는데, 3분박 4박자로 느린 중중모리장단에 맞으며,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며 두 장단에 소리를 메기면, 상도꾼들이 같은 장단에 “어넘 어넘 어나리님차 너화넘.”하며 받는다.

또 집을 지을 때에는 집터를 다지면서 「지경다지는 소리」를 부르는데, 느린 중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으며, 선소리꾼이 한 장단에 소리를 메기면 역꾼들이 같은 장단에 “어여루 상사뒤여.”하며 받는다. 집의 모양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상량을 올릴 때는 고사를 지내고 「상량소리」를 부르면서 노는데, 중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으며 선소리꾼이 두 장단에 소리를 메기면 목수들이 같은 장단에 “어유아 상량.”하며 받는다.

이 밖에도 「육자배기」 · 「흥타령」 · 「진도아리랑」 · 「노랫가락」 · 「청춘가」 등의 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이 지방에서 주로 불리는 민요들은 전라도지방 특유의 육자배기토리의 선율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업 · 교통

비교적 산지가 많아, 초경지 면적 중에서 경지율은 약 16%이다. 주요 농산물은 구례분지 중심의 주곡과 원예농업작물이며, 섬진강 남안의 간전 · 문척에서 재배되는 무 · 배추는 서울 · 광주 등지로 출하되고 있다. 산지에서는 밤 · 버섯 · 고사리 · 신탄 등이 나며, 목재도 많이 생산된다.

또한, 산수유 · 산삼 · 백지(白芷) · 생지황(生地黃) · 당귀(當歸) 등의 약재가 많이 나며, 특히 곡우철의 거지수에서 나는 수액과 경칩철에 단풍나무과의 고로쇠나무에서 나는 고로쇠 물은 약수로 매우 유명하다. 한편, 섬진강에서는 은어가 많이 잡힌다.

특히 기후조건으로 산수유가 많이 생산되는데 군이 전국 제1의 주산지로 전국 생산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에 산동면에서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량의 상당부분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어 농가 수입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특산물로는 노고단향수 · 고로쇠약수 · 작설차 · 토종꿀 · 산수유술 등이 생산된다. 광공업으로는 구례읍에서 정미 · 양조 · 제재공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상업활동은 구례읍의 상설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5일 정기장이다. 군의 마을이 거의 산중에 위치하고 있어, 상업이 발달하지 못해 조선 고종 때까지 오직 구례읍장만이 열렸다. 민족 항일기에 와서는 구례읍장이 3·8일에, 광의면의 연파장(煙波場)이 2·7일에, 외산면의 원촌장(院村場)이 1·6일에 각각 개장되었다.

현재는 구례읍의 상설시장 외에 구례장이 3·8일에, 광의면 연파리의 광의장이 1·6일에, 산동면 원촌리의 산동장이 2·7일에, 토지면 구산리의 토지장이 5·10일에 열려, 인근에 산재해 있는 산간 마을들의 교역처 기능을 하고 있으나, 구례장을 제외하고는 그 규모가 작다. 구례장에서는 머루 · 버섯 · 취 · 더덕 · 도라지 · 고사리 등의 산나물과 산수유 · 백지 · 생지황 · 당귀 등의 한약재가 주로 거래되며, 과거에는 목기시장(木器市場)으로도 유명했으나 현재는 쇠퇴하였다.

교통은 국도가 남원 · 구례 · 하동을 거쳐 남해고속도로로 연결되고, 구례에서 화엄사에 이르는 관광도로가 있으며, 2011년에 개통한 순천완주고속도로가 구례를 지나고 있다. 전라선이 섬진강 서안을 따라 달리나 이 군을 통과하지는 않고, 순천시에 있는 구례구역을 통해 전주~순천과 연결된다.

관광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국립공원은 한국 팔경의 하나로 산지와 사찰, 그리고 섬진강이 하나의 거대한 산악공원을 이루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한 천은사가 지리산 기슭에 위치하며, 마산천을 따라 올라가면 지리산국립공원의 관문인 화엄사가 있다.

화엄사와 화엄사계곡을 뒤로 하고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운해(雲海)로 유명한 노고단에 이르고, 임걸령 · 토끼봉, 그리고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고원과 고사목지대(枯死木地帶)를 지나면 주봉인 천왕봉에 이른다. 섬진강과 지리산이 합쳐서 하천경관의 극치를 이루는 강변도로를 따라가다가 산길로 접어들면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계곡과 연곡사가 있다.

지리산국립공원 일원에는 관광호텔 · 여관 · 음식점 · 야영장 · 휴게소 · 관광안내소 등 각종 관광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으며,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최근에는 노고단을 거쳐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으로 연결되는 관광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이 도로가 완공되면 자동차로 지리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더욱 많은 관광객이 방문할 것이다.

섬진강 벚꽃길에도 최근 관광객이 모이고 있다. 구례읍에는 명창 송만갑의 동편제판소리전수관 · 기념관 · 생가 · 추모비 등이 있다. 1987년 5월에 산동면에서 온천이 발견되어 12월에 온천지구로, 1989년에 관광지로 각각 지정되어 온천 개발 계획의 승인을 받았다. 주요 성분은 게르마늄 · 탄산나트륨 · 칼슘 · 마그네슘 · 불소 등으로 구성되었다. 1992년에 종합온천장 건축 공사가 착공되어 1995년 5월에 개장되었다. 부대시설로 온천장 주변에 청소년수련관 · 어린이 유희시설 · 골프장 · 가족콘도 · 호텔 · 오토캠프장 등의 가족휴양시설 및 위락 시설이 있다.

읍 · 면
  1. 구례읍(求禮邑)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45.79㎢, 인구 1만 172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봉동리이다. 본래 구례군 지역으로 구례읍내가 되므로 현내면(縣內面)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현내면과 계사면(界肆面)이 통합되어 구례면이 되었고, 196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400∼700m의 산지로, 서쪽의 읍계는 섬진강 하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부는 섬진강과 그 지류인 서시천이 합류하면서 구례분지를 형성하였다. 두 하천의 서쪽으로 전개되는 분지의 일부에는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와 오이 · 무 · 배추 · 마늘 · 고추 등의 채소류 생산이 많으며, 특히 신월리의 배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요즈음은 대도시지역을 상대로 하는 원예농업이 발달하고 있으며, 양봉과 산수유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입구로서 관광객이 많이 모이며, 읍에서 남쪽으로 국도를 따라 섬진강 건너편에 있는 순천시 황전면에는 구례읍으로 통하는 전라선의 역이 있으며, 하동과 곡성 · 순천으로 국도가 연결되고 있다. 과거에는 섬진강의 하항(河港)으로서 농산물 · 임산물 집산지로 발달했으나, 현재 수운은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문화유적은 논곡리에 삼층석탑, 봉서리에 구례향교, 백련리에 봉련사(鳳蓮祠), 그리고 산성리에는 삼한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는 마봉산성지가 흔적만 남아 있다.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례읍사무소 건물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산성(山城) · 백련(白蓮) · 봉북(鳳北) · 봉동(鳳東) · 봉남(鳳南) · 봉서(鳳西) · 원방(元方) · 신월(新月) · 계산(桂山) · 논곡(論谷) 등 10개 리가 있다.

  1. 간전면(艮田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4.68㎢, 인구 1,55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간문리이다. 신라 경덕왕 때 곡성군 구례현 지역이었다가 1895년(고종 4)에 구례군 간전면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문척면이 병합되고 간전 · 문척 두 면의 이름을 따서 간문면(艮文面)이라 하였다. 그 뒤 1946년에 다시 두 면으로 나뉘어 간전면이 되었다.

서쪽에 있는 수평리유역을 제외하고는 험준한 산지이며, 남쪽의 산지에서 발원한 수평천(壽坪川)이 여러 지류를 합하여 흐르다가 간문리에서 섬진강에 합류하여 유역에 곡저평야를 형성한다. 동쪽의 중대천(中大川)은 광양시와의 경계를 이루면서 섬진강에 합류한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참깨 · 들깨 등이 생산되며, 운천리 일대에서는 인삼, 흥대리 일대에서는 산수유가 재배된다. 과일로는 감이 유명하며, 삼산리 산정마을 일대에서는 가내수 공업으로 광주리 등이 생산된다. 섬진강 동방천 여울에서는 은어가 잡힌다.

산세가 험하여 도로가 발달하지 못해 도산교(陶山橋)로 섬진강을 건너 수평천을 따라 도로가 통하고 있을 뿐 교통이 불편하다. 그러나 섬진강을 따라 나란히 하는 도로는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하다.

문화유적은 양천리의 경안정 · 육로정(六老亭)이 있으며, 삼산리 수내마을의 팽나무숲은 면목(面木)으로, 흥대리 대촌마을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간문(艮文) · 양천(陽川) · 흥대(興大) · 수평(壽坪) · 삼산(三山) · 효곡(孝谷) · 금산(錦山) · 운천(雲川) · 중대(中大) 등 9개 리가 있다.

  1. 광의면(光義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3.69㎢, 인구 2,47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연파리이다. 신라 경덕왕 때는 곡성군, 고려 때는 남원부에 속하여 방광면(放光面)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원부 소의방(所義坊)이었던 소의면과 용강면 사우 · 본신의 각 일부지역이 편입되어 방광과 소의의 두 면 이름을 따서 광의면이라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북부는 노고단(1507m) 등이 있어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 산지는 약 200m 지점에서 경사가 크게 완만해져 산록완사면을 형성한다. 종석대(鍾石臺)에서 발원한 하천은 좁은 골짜기를 흐르다가 유명한 천은사 입구에서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여러 지류로 분류되어 대전리 · 지천리 등을 가로질러 서시천에서 합류된다.

주요 농산물로는 산수유 · 택사 · 길경 · 지황 등 약초가 생산되고, 원예작물로는 오이 · 송이버섯 등이 재배된다. 도로는 남원산내와 구례읍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대전리에 석불입상, 방광리에 천은사와 매천사가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 지천리에 구례지역 최초의 신문화학교로 세워졌던 호양학교(壺陽學敎)가 일제시대에 폐교되었다가 2006년에 건물이 복원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연파(煙波) · 방광(放光) · 지천(芝川) · 대전(大田) · 온당(溫堂) · 구만(九灣) · 대산(垈山) · 수월(水月) 등 8개 리가 있다.

  1. 마산면(馬山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32.27㎢, 인구 2,85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산리이다. 본래 구례군 지역으로 마산의 이름을 따서 마산면이라 불렸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방광면의 천변리 · 당촌리의 각 일부와 토지면의 용두리 일부지역이 편입되었다.

면의 북쪽에 지리산의 노고단과 종석대가 위치하고, 동북쪽의 험준한 산지는 100∼200m를 전후해서 경사가 크게 감소하여 완사면을 이룬다. 이 지역에 지리산 반달곰 방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평야는 서시천 · 섬진강 · 마산천 유역에 분포하고 있다. 주요 산업으로 참깨 · 들깨 · 딸기 · 오이의 재배가 활발하고, 특용작물로 표고버섯 · 송이버섯이 생산된다. 냉천리에는 표고버섯 가공공장이 있고, 산채음식이 별미이다. 그 밖에 산수유 등 약초도 재배되며, 작설차(雀舌茶)는 특산명물이다.

도로는 구례읍과 광의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황전리에 화엄사가 있으며, 경내에는 사사자삼층석탑 · 각황전 · 동오층석탑 · 서오층석탑 · 대웅전 · 원통전전사자탑, 사도리에 삼층석탑 · 석불좌상 등이 있다. 또한, 이외에도 천연기념물인 올벚나무, 사향노루와 금잔(金盞), 화엄석경, 보제루 등이 있어 국가유산의 보고지대이다. 황천리 남악동에서는 매년 곡우 때에 지리산약수제가 열린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마산(馬山) · 냉천(冷泉) · 광평(廣坪) · 사도(沙圖) · 갑산(甲山) · 황전(黃田) 등 6개 리가 있다.

  1. 문척면(文尺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06㎢, 인구 1,2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전리이다. 본래 구례군 지역으로 문재면 또는 문척면이라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간전면이 병합되고, 간전 · 문척 두 면의 이름을 따서 간문면이라 불렸다. 1946년에 다시 간전면과 문척면으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렀다.

북쪽의 섬진강연안과 중산천(中山川)유역을 제외하고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중산천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하여 흐르다가 월전리부근에 평야를 형성하고 섬진강에 합류한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참깨 · 들깨 · 고추 · 수박 · 사과 · 감 · 포도 등이 생산되고, 임산물로는 대나무가 있다. 구례읍과는 매우 가까우며 문척교로 섬진강을 건넌다. 이곳 섬진강에서는 매년 섬진강벗꽃축제가 열린다.

문화유적은 죽마리의 사성암과 마애여래좌상 · 고인돌군, 월전리의 선돌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월전(月田) · 죽마(竹麻) · 금정(金亭) · 중산(中山) 등 4개 리가 있다.

  1. 산동면(山洞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1.33㎢, 인구 3,15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촌리이다. 본래 남원부의 지역으로 지리산 밑 골짜기가 되므로 산골 또는 산동이라 하여 고려 때 산동부곡이라 불렸다. 1897년에 구례군에 편입되어 두 면으로 갈라져 지리산의 상봉 쪽이 내산면(內山面), 그 바깥쪽이 외산면(外山面)이라 하였다. 1932년 내산 · 외산 두 면이 다시 병합되어 산동면으로 개칭되었다.

동 · 서 · 북쪽은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이고, 남쪽으로는 저산성 산지로 막혀 분지 형상을 이루며, 산지가 83.4%에 달한다. 지리산 3대봉의 하나인 반야봉을 비롯하여 대두산 · 천마산 등의 산이 많다. 하천은 계월천 · 무은천 · 둔기천 등이 합류하여 서시천을 이루며, 이들 하천의 유역에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다. 농업이 주 산업이며, 전 농가의 80∼90%가 산수유를 재배해 그 생산량이 전국의 60%를 차지한다. 매년 4월이 되면 온 동네가 산수유꽃에 덮히는 절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도로는 국도가 남북으로 남원과 구례를 연결하며, 이외에도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이평리의 윤문효공신도비 · 윤문효공묘전석등 및 석비, 원촌리의 김완장군전승유적비, 시상리의 운흥정, 좌사리의 방호정 등이 있으며, 온천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원촌(院村) · 계천(桂川) · 원달(元達) · 수기(水基) · 내산(內山) · 대평(大坪) · 위안(位安) · 좌사(佐沙) · 관산(官山) · 탑정(塔挺) · 외산(外山) · 이평(梨坪) · 시상(侍上) · 둔사(屯寺) · 신학(莘鶴) 등 15개 리가 있다.

  1. 용방면(龍方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4.68㎢, 인구 1,58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정리이다. 본래 구례군 지역으로 용천(龍川) 또는 용강면(龍江面)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원부 중방방(中方坊)의 일부와 외산면 우와리(牛臥里) 일부지역이 편입되어 용강 · 중방의 두 면의 이름을 따서 용방면으로 개칭되었다.

서부와 남부에 천왕봉(683m) · 요강바위산(546m) 등의 산이 있으며, 이들 산지는 100m 내외에서 완사면을 이루어, 서시천 · 신도천 · 송정천 등의 하천유역에 평야가 분포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산수유 · 지황 · 택사 등의 약재와 양잠 · 사과가 생산된다.1997년 이래 광평리를 중심으로 대규모 야생화단지가 조성되어 주민들의 큰 소득원이 되고 있다. 계산리 다무락마을은 농업진흥청이 지정한 전통마을로 많은 관광객이 모이고 있다. 도로는 국도가 남원과 구례로 통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용정(龍井) · 사림(四林) · 신도(新道) · 신지(新智) · 용강(龍江) · 죽정(竹亭) · 중방(中方) 등 7개 리가 있다.

  1. 토지면(土旨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96.69㎢, 인구 2,71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산리이다. 본래 구례군 지역으로 도자기를 굽던 토지처였는데, 조선시대에 면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산면 하사리 일부가 병합되었다.

지리산의 노고단에서 형제봉 · 월령봉으로 이어지는 산지들이 남쪽의 섬진강에 이르러 고도가 낮아지며, 섬진강은 협곡을 흐른다. 덕운천과 연곡천유역에는 평야가 분포한다. 또 덕운천은 하류의 오미리와 금내리 일대에 소규모의 평야를 이룬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산수유 · 쌀 · 보리 · 밤 · 한봉 · 사과와 고랭지채소가 재배된다.

도로는 면의 남부로 국도가 남원과 섬진강변을 따라 하동으로 통한다. 문화유적은 오미리에 운조루, 내동리의 연곡사 경내에는 동부도와 북부도, 삼층석탑 · 현각선사탑비 · 동부도비 · 서부도 등이 있다. 또 송정리에 정유재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일곱 의사를 모신 사당인 칠의각(七義閣)과 석주관칠의사묘가 있고, 구산리에 고인돌이 있다. 특히, 연곡사에서 지리산 반야봉에 이르는 피아골은 단풍이 유명하며 섬진강의 맑은 물과 더불어 지리산 십경에 속하여, 등산객과 관광객이 많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구산(九山) · 오미(五美) · 파도(把道) · 용두(龍頭) · 금내(金內) · 송정(松亭) · 내서(內西) · 내동(內東) · 문수(文殊) · 외곡(外谷) 등 10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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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구역연감』(한국도시행정연구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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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지』 1·2·3(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82·1983·1984)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2)
『내고장 전통 가꾸기』(구례군, 1981)
『전라남도국악실태조사』(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80)
『전남교육30년사』(전남교육30년사편찬위원회, 1977)
『전남고고학지명표』(최몽룡, 1975)
구례군(www.gurye.go.kr)
구례교육청(www.kred.or.kr)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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