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윤상은(尹相殷) 등이 설립하였다. 이 회사가 취급한 것은 예금과 대금업, 어음할인업 등으로서 근대은행업무와 별로 차이가 없었다.
이 회사는 구포를 중심으로 한 김해지역 일대의 물상객주와 지주 70여 명이 합자하여 자본금 2만5천원으로 창립되었는데, 총자본금을 5백주로 나누고 1주당 50원(圓)으로 전액불입이었다.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것은 당시 구포의 만석꾼 지주출신인 윤상은과, 역시 구포의 물상객주로서 쌀의 대일수출로 거부가 된 장우석(張禹錫)이었다. 원래 향반 출신이었던 윤상은은 일찍부터 신학문을 익힌 소장 실업인이었다.
더욱이 이 회사는 구포가 부산의 북쪽, 낙동강하류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낙동강 일대의 물산집산지라는 지리적인 장점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영도 충실하고 영업실적이 매우 양호하여 사세가 크게 일어났다.
그런데 1911년 「조선회사령」이 시행되자 사설회사인 이 회사는 금융대부업은 할 수 있었으나, 예금업은 취급할 수 없게 되었다. 1912년 6월에 자금 일체를 구포은행에 인계하고 그해 9월에 자본금 50만원, 240명의 주주로 구포은행이 발족됨으로써 사실상 문을 닫게 되었다. →구포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