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書經)』 「함유일덕(咸有一德)」에서 이윤은 태갑에게 군도(君道)로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덕과 재능이 있는 자에게 관직을 맡길 것, 둘째, 군주 자신이 겸손한 덕을 지녀 백성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경』 「홍범」에서는 군도를 뜻하는 왕도(王道)와 왕의(王義)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편벽됨이 없고 치우침이 없이 왕의 뜻을 따르며, 사사로운 좋아함이 없이 왕의 도를 따르고, 사사로운 미워함을 짓지 말아 왕의 길을 따르십시오. 치우치거나 편당을 짓는 일이 없으면 왕의 도가 넓고 평탄하며, 상도에 어긋남이 없고 굽음이 없으면 왕의 도가 정직할 것입니다. 그 표준이 있는 것에 모여서, 그 표준이 있는 것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은 군주의 도덕적 수양과 신하 및 백성에 대한 공정함을 특히 강조한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천승의 제후국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다음을 강조했다. 국사를 삼가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으며, 국용을 절약해 부세를 적게 거두고 사인(士人)을 아끼며, 백성을 때에 맞게 부역에 동원해 그들의 삶을 헤아려 주는 것이다. 『맹자』 「이루상」에서는 요(堯)가 백성을 다스린 것을 군도의 극진한 표준으로 제시했다. 그 구체적 방안으로는 여민동락(與民同樂), 즉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누리고,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마련해 주며, 정치를 통해 삶을 봉양하고 죽음에도 유감이 없게 하는 것[養生喪死無感]을 강조했다. 이는 인정(仁政) 실현의 출발점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대학』 「평천하」장에서는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능력을 포용하는 자세를 군도의 덕목으로 강조했다.
『순자』 「군도」 편에서는 군주가 예의를 존중하며 현명한 신하를 등용하고, 능력 있는 관리를 부리면서 이익을 탐하지 않는다면 군도를 잘 실현한 것이라 했다. 또한 신하에게 예를 갖춰 분배하고 공정하게 대할 것을 강조했다. 한대 이후 군도에 대한 인식을 종합한 『설원(說苑)』의 「군도」 편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다음을 강조했다. 군주는 애민사상(愛民思想)을 기본으로 교화(敎化)를 중시하고, 형벌을 가볍게 하며, 사람의 자질과 재능을 살펴 현인(賢人)을 선임(選任)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임용해야 한다. 또한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는 멀리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군주 자신이 품행과 도덕을 수양하고 독자적으로 결단할 것, 하늘을 공경하며 천하가 공물(公物)임을 알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이는 군주가 천하를 사적 소유가 아닌 공적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각성을 보여 준다.
조선의 경우, 중종 이후 사림 정치가 발전함에 따라 군주에게 맹자의 왕도 정치사상에 의거하여 군도를 실현할 것을 진언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조광조(趙光祖)는 패도를 숭상하면 나라가 부강해지는 효과는 빠르지만, 인의(仁義)의 도(道)를 회복할 수는 없으므로 왕도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맹자의 왕도 정치사상에 근거해 군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언적(李彦迪)은 왕도 정치의 실현은 임금 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만사가 다스려지고 사람의 마음이 순조로워지며 화기가 응하지만,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만사가 어그러지고 사람의 마음도 비뚤어지며 사악한 기운이 응한다. 그는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을 지치(至治) 실현의 핵심으로 중시했으며, 그러한 지치의 실현은 결국 임금 자신의 학문 수양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임금에게 학문을 강의하는 경연(經筵)을 매우 강조했다. 선조에게 올려진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와 이이(李珥)의 『성학집요(聖學輯要)』는 모두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아 올바른 군도를 실현하려는 조선 유학자들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