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좌랑, 대교, 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95년 대교(待敎)로서 검열 강징(姜澄)과 함께, 왕명을 내릴 때에는 승지와 사관(史官)이 반드시 참석하도록 건의하였다. 1498년 수찬에 올라 부교리를 역임하고, 1504년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종묘에 모시려 하자, 그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의금부에 하옥되어 장(杖) 60의 처벌을 받고 용궁(龍宮)에 유배되었다.
그 해 12월 용궁에서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고 참형에 처해졌다. 기개와 절조가 있는 인물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해동명신전(海東名臣傳)』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잡록(海東雜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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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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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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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용궁 유배 : 『연산군일기』 52권, 1504년(연산 10) 4월 7일. "박안성·최숙생 등을 곤장 때리고 유배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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