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사성, 서원현감,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현감 재직중에는 재결(裁決)을 신속히 하여 관아에 체송(滯訟: 소송이 미해결로 정체됨)이 없었다고 한다. 그 뒤 내직으로 들어와서 부수찬이 되어 경연에 입시(入侍)하였을 때 문의(文義)를 조리있게 분석하여 명석한 식견을 널리 알렸다.
1683년(숙종 9) 교리가 되어 더욱 직분에 충실하는 동안, 영부사 송시열(宋時烈)이 태조의 존호(尊號)에 정륜소의(正倫昭義)를 가상(加上)함으로써 위화도회군의 위업을 현창(顯彰)하자는 소를 올린 일이 있다. 이 때 송시열의 주장에 반대하였는데, 송시열이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자, 마침내 신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고 교외로 나가 은거하였다. 최석정(崔錫鼎)이 묘갈명을 지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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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기유식년사마방목(己酉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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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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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송시열의 존호주장에 반대 : 『숙종실록』 14권, 1683년(숙종 9) 4월 19일. "박세채가 경연에서 시호를 올리는 일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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