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성균관사성, 서원현감,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여원(汝元)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84년(숙종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교리
  • 출생 연도1647년(인조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영박 (호서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6월 2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사성, 서원현감,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원(汝元).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제조 서경주(徐景霌)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9년(현종 10) 진사가 되고 같은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3년 10월, 승문원의 정언 · 지평을 거쳐 사헌부집의 · 성균관사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서원현감이 되었다.

현감 재직중에는 재결(裁決)을 신속히 하여 관아에 체송(滯訟: 소송이 미해결로 정체됨)이 없었다고 한다. 그 뒤 내직으로 들어와서 부수찬이 되어 경연에 입시(入侍)하였을 때 문의(文義)를 조리있게 분석하여 명석한 식견을 널리 알렸다.

1683년(숙종 9) 교리가 되어 더욱 직분에 충실하는 동안, 영부사 송시열(宋時烈)이 태조의 존호(尊號)에 정륜소의(正倫昭義)를 가상(加上)함으로써 위화도회군의 위업을 현창(顯彰)하자는 소를 올린 일이 있다. 이 때 송시열의 주장에 반대하였는데, 송시열이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자, 마침내 신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고 교외로 나가 은거하였다. 최석정(崔錫鼎)이 묘갈명을 지었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기유식년사마방목(己酉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17])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송시열의 존호주장에 반대 : 『숙종실록』 14권, 1683년(숙종 9) 4월 19일. "박세채가 경연에서 시호를 올리는 일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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