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기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성균관사성, 서원현감,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여원(汝元)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7년(인조 25)
사망 연도
1684년(숙종 10)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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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사성, 서원현감,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원(汝元).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제조 서경주(徐景霌)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9년(현종 10) 진사가 되고 같은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3년 10월, 승문원의 정언·지평을 거쳐 사헌부집의·성균관사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서원현감이 되었다.

현감 재직중에는 재결(裁決)을 신속히 하여 관아에 체송(滯訟: 소송이 미해결로 정체됨)이 없었다고 한다. 그 뒤 내직으로 들어와서 부수찬이 되어 경연에 입시(入侍)하였을 때 문의(文義)를 조리있게 분석하여 명석한 식견을 널리 알렸다.

1683년(숙종 9) 교리가 되어 더욱 직분에 충실하는 동안, 영부사 송시열(宋時烈)이 태조의 존호(尊號)에 정륜소의(正倫昭義)를 가상(加上)함으로써 위화도회군의 위업을 현창(顯彰)하자는 소를 올린 일이 있다.

이 때 송시열의 주장에 반대하였는데, 송시열이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자, 마침내 신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고 교외로 나가 은거하였다. 최석정(崔錫鼎)이 묘갈명을 지었다.

참고문헌

『현종실록(顯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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