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찬선,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49년 효종 즉위 뒤 공조좌랑에 임명되어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갔으며, 경상도사 등을 역임하고, 그 뒤 집의 · 진선(進善) 등을 거쳐 1658년(효종 9) 승지에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찬선(贊善)에 오르고, 1659년 현종이 즉위한 뒤에 한성부우윤에 임명되었다.
이듬 해 예송문제가 있을 때, 송시열과 송준길에 대립하여 윤선도를 지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같은 서인의 규탄으로 파직되어 낙향하던 중 광주(廣州)의 선영에 머물러 살았다.
1668년 송준길이 임금에게 “시는 애군우국(愛君憂國)하는 것이 늙을수록 더욱 돈독하니 버릴 수 없다.”고 주청하여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이듬해 공주(公州: 현재 大田)의 옛 집으로 돌아갔다.
송시열과 같은 기호학파로서 예론에 밝았다. 그가 죽자 좌참찬에 추증하고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였다. 대전의 도산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탄옹집(炭翁集)』 7책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탄옹집(炭翁集)』
- 『현종실록(顯宗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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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인물고』 권10, 권시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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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권시 저술 : 『탄옹집(炭翁集)』(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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