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시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승지, 찬선,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성(思誠)
  • 탄옹(炭翁)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72년(현종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지|찬선|한성부우윤
  • 출생 연도1604년(선조 37)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상갑 (전 관동대학교, 유학)
  • 최종수정 2025년 0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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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찬선,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성(思誠), 호는 탄옹(炭翁). 아버지는 좌랑 권득기(權得己)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도정(都正) 이첨(李瞻)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행(志行)이 절이(絶異)하여 사람들이 안자(顔子)에 비유하였다. 9세 때 이미 훌륭한 시를 지었으며, 15세에 이기지설과 사칠지변(四七之辨)에 정통하였다. 1636년(인조 14) 대군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된 것을 비롯하여, 선릉참봉(宣陵參奉) · 세자시강원자의 등 여러 차례 벼슬이 주어졌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49년 효종 즉위 뒤 공조좌랑에 임명되어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갔으며, 경상도사 등을 역임하고, 그 뒤 집의 · 진선(進善) 등을 거쳐 1658년(효종 9) 승지에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찬선(贊善)에 오르고, 1659년 현종이 즉위한 뒤에 한성부우윤에 임명되었다.

이듬 해 예송문제가 있을 때, 송시열과 송준길에 대립하여 윤선도를 지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같은 서인의 규탄으로 파직되어 낙향하던 중 광주(廣州)의 선영에 머물러 살았다.

1668년 송준길이 임금에게 “시는 애군우국(愛君憂國)하는 것이 늙을수록 더욱 돈독하니 버릴 수 없다.”고 주청하여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이듬해 공주(公州: 현재 大田)의 옛 집으로 돌아갔다.

송시열과 같은 기호학파로서 예론에 밝았다. 그가 죽자 좌참찬에 추증하고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였다. 대전의 도산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탄옹집(炭翁集)』 7책이 있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탄옹집(炭翁集)』

  • - 『현종실록(顯宗實錄)』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인물고』 권10, 권시묘지명.

  • 주2

    : 권시 저술 : 『탄옹집(炭翁集)』(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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