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호분위 좌부장, 경상좌도 병마우후를 역임한 무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권응심은 크고 작은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영천의 대동(大同)과 한천(漢川)에서 일본군을 격퇴하고, 박연(朴淵)과 소계(召溪)까지 진격하였다. 그는 영천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화공으로 공격하여, 영천성을 탈환하는 데 전공을 세웠고, 그 공로로 수문장에 제수되었다. 그는 문경과 안동의 일본군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경주 황룡사 아래에서 일본군을 격퇴하고, 수급을 왕세자의 행궁에 바쳤다. 이에 선조는 권응심을 병졸교위(秉節校尉) 호분위 좌부장에 제수하였다.
얼마 후 권응심은 훈련원(訓練院) 주부(主簿)로 승진하였다. 1594년(선조 27) 식년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 정(正)에 제수되었다. 그는 정유재란 때 명(明) 경리(經理) 양호(楊鎬) 휘하에 소속되었고, 경상좌도 병마우후에 제수되었다. 양호와 함께 울산 도산(島山)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백운재실기(白雲齋實記)』
- 『순조실록(純祖實錄)』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일성공실기(日省公實記)』
논문
- 장준호, 「임진왜란시 영천성(永川城) 수복 전투와 그 의의」(『청계사학』 22, 청계사학회, 2020)
주석
-
주1
: 법에 의하여 시비곡직을 가리는 법관 또는 재판관. 우리말샘
-
주2
: 사촌 관계인 형과 아우. 우리말샘
-
주3
: 조선시대 무산계(武散階)의 관계명.
-
주4
: 조선 시대에 둔 오위(五衛)의 하나. 문종 원년(1451)에 둔 것으로, 임진왜란 후에 오위병제가 무너지면서 명목만 남아 있다가 고종 19년(1882)에 없앴다. 우리말샘
-
주5
: 조선 시대에, 군사의 시재(試才), 무예의 연습, 병서의 강습 따위를 맡아보던 관아. 세조 12년(1466)에 훈련관을 고친 것으로, 융희 원년(1907)에 한일 신협약의 체결에 따라 해산되었다. 우리말샘
-
주6
: 조선시대 관서의 문서와 부적(符籍)을 주관하던 종6품 관직.
-
주7
: 조선시대 정삼품(正三品) 당하관(堂下官) 관직.
-
주8
: 정유재란 때 명에서 파견된 무장의 최고 지휘관으로 파병 당시 직위는 흠차경리조선군무도찰원우첨도어사(欽差經理朝鮮軍務都察院右僉都御史).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