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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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녀가 / 계녀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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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조선후기 영남지방의 양반집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가사. 내방가사.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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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가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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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영남지방의 양반집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가사. 내방가사.
내용

내방가사(內房歌辭)·규중가도(閨中歌道)·규방문학(閨房文學)·규중가사(閨中歌辭) 등으로도 불린다. 조선 영조 중엽경부터‘가 ᄉᆞ’ 또는 ‘두루마리’라는 이름 아래 창작, 전파, 애독되다가 6·25전쟁 이후 거의 소멸되었다. 주로 영남지방 양반집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되었다.

권영철(權寧徹)이 수집한 작품 수는 6,000여 편으로, 이들 작품들을 안동문화권과 경주문화권·성주문화권으로 나눈 비율은 5:3:2이다. 이런 전체량과 비율로 볼 때, 규방가사의 창작·전파·애독은 주로 영남지방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영남 북부가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남 북부지역은 구체적으로 안동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임하(臨河)·천전(川前), 동북으로는 도산(陶山), 서로는 하회(河回), 서북으로는 금계(金溪) 등을 잇는 타원형 지역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의 유교문화적 성격과 규방가사의 주류적 성격을 연관지을 때에, 발생지는 도산이나 하회지방으로 추측된다.

규방가사는 영조 중엽에 발생하였다고 보는데, 그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 수 있다. ① 가사문학은 사대부층의 성리학적 교술문학이기에, 이런 가사문학의 성격은 성리학이 크게 존중된 영남지방의 양반계급 남녀들에게 공유될 수 있었다. ② 가사문학의 표현방식은 국문인데, 그 당시의 영남지방 양반부녀자들의 상당수가 국문을 해독할 수 있었다.

③ 가사문학이 사(詞)로서 가창될 때는 사대부간에만 잘 알려졌으며 부녀자층에서는 이것이 난삽한 것이었으나, 바야흐로 사(辭)로서 가창이 거세되고 낭송이 되자, 여기서 남녀의 공유물인 가사가 능히 마련될 수 있었다. ④ 영남지방의 사대부들이 정통적인 가사를 지어서 제시했을 때, 그것이 그들의 생활이념과 같기 때문에(계녀가 따위) 능히 소화할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⑤ 영남지방 양반 부녀자들은 영남지방의 민요에 상당한 교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체면 때문에 서민 중심의 민요를 버리거나 일부 포함하면서 사랑방 문학인 가사문학을 지향하였을 것이다.

이런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 규방가사의 발생시기는 아직까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개 영조조 초기에서 중기로 좁혀진다. 지금까지 발견된 규방가사 중에서 작가·시대·장소·창작동기 등이 알려진 것으로는,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에서 1794년(정조 18) 4월에 정부인 연안 이씨가 장자인 유태좌(柳台佐)의 도문연(到門宴:과거에 급제한 후 집에 돌아옴을 축하하는 잔치)을 축하하여 지은 <쌍벽가 雙璧歌>가 있다.

지질이나 사용한 언어,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 등으로 보아, 창작연대가 <쌍벽가>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심증이 가는 작품들이 있으나, 확실한 근거가 없어 시대추정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규방가사의 원류가 계녀교훈류이고 보면, 이것이 다른 유형보다 먼저 발생했을 것이므로, 앞의 송축류인 <쌍벽가>의 창작연대보다는 규방가사의 발생이 약 반세기 가량 올라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규방가사의 발생은 영조조의 초·중기로 측정된다.

이렇게 발생한 규방가사는 지속·소멸의 전개를 보이는데, 대체로 4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영조·정조시대인 18세기로 모방습작기라 할 수 있다. 양반가사로부터 발생한 규방가사는 아직도 그 터전을 완전하게 잡지 못하고, 남성들이 써준 것을 익히거나 모방하다가 창작으로까지 이른 시기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교술적인 교훈가들이다.

제2기는 정조 이후 갑오경장까지로 융성기의 전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도 교훈가가 성행하였지만 다른 규방가사의 소재가 대부분 이 시기에 나타나며, 그 형식도 매우 정제되고 조사(措辭)도 잘 다듬어진 시기이다. 특히, 이 시기의 규방가사는 소설·내간·제문 등을 규방가사화했으며, 외국의 문학작품과 역사서도 번안하여 규방가사화하는 황금기이다.

제3기는 갑오경장 이후 광복 전까지로 융성기 후기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도 규방가사는 전통적인 유교적 특색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개화적인 가사가 주종을 이루면서 개화가사를 통해 일제에의 반항, 망국의 한, 독립투쟁의 선동 등을 읊었다.

제4기는 8·15광복 이후 지금까지로 쇠퇴기라 할 수 있다. 광복을 맞자 규방가사의 부흥이 시도되기도 하였으나 차차 쇠퇴의 길을 가다가 6·25전쟁을 겪은 뒤 소멸단계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완전히 소멸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도 영남지방 시골에 가면 규방가사를 짓고, 가회(歌會)를 열고, 필사하여 전파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규방가사가 영조조 이후의 양반가사로부터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그 형식은 영조조 이후의 양반가사의 형식과 거의 비슷하다. 즉, 4·4조를 길게 엮어 나가는 음수율과 음보격이다. 그러나 다른 형식의 것도 일부 있는데 대개 여덟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양반가사의 표기문자가 국한문 혼용체이며 한자를 즐겨 쓰는 데 비해, 규방가사는 한글을 주로 쓰고 있다. ② 양반가사의 명칭은 ‘가사(歌辭·歌詞)’·‘별곡(別曲)’·‘곡(曲)’·‘사(詞)’·‘가(歌)’ 등으로 다양하고 제목 또한 이에 준하는 데 비해, 규방가사의 명칭은 ‘가ᄉᆞ’ 또는 ‘두루마리’이며, 제목은 거의가 ‘○○○가라’는 접미사 ‘라’를 붙인다.

③ 양반가사의 구성은 입체적인 면과 단일형을 취하는 데 비해, 규방가사의 구성은 평면적인 면과 복합형을 많이 보인다. ④ 양반가사는 4음보에 3·4조가 우세한 것도 있지만, 규방가사는 4음보에 4·4조가 정제일관(整齊一貫)된 것이 우세하다. ⑤ 양반가사는 민요형식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규방가사는 민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⑥ 양반가사는 소설·내간(內簡)·제문을 흡수하지 않았으나, 규방가사는 이들을 흡수하였다. 내간·제문 등도 4·4조로 읊는 형식이 바로 그것인데, 특히 제문의 경우는 서두의 항용구인 ‘유세차……감소고우’까지는 산문의 형식을 취하나, 그 다음부터 본문에 가서는 4·4조로 된 가사형식을 원용하고 말미에 ‘상향’ 두 자만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였다.

⑦ 양반가사의 많은 작품들이 시조의 종장형식을 답습하고 서두구(序頭句)에는 전형이 없으며 발문이 없는 데 비해, 규방가사는 서두구와 종결형식과 발문에 독특한 것이 있다.

먼저 서두구를 보면, ‘어와세ᄉᆞᆼ 사ᄅᆞᆷ들아 이ᄂᆡ말ᄉᆞᆷ 드러보소.’와 같은 호소청유형, ‘어화 ᄋᆡ달ᄒᆞᆯ샤 이ᄂᆡ신세 애달ᄒᆞᆯ샤 건곤부모 졍ᄒᆞᆫ후의 ᄉᆡᆼ남ᄉᆡᆼ녀 되엿도다.’와 같은 여신인과형(女身因果形), ‘이○ᄂᆞᆫ 어느○고 삼월춘풍 조흔○라.’와 같은 계절형, ‘산아산아 일월산아 영남○에 솟은 산아.’와 같은 민요형 등의 전형을 보인다. 다음으로 종결형식은 4·4조 그대로 연장되다가 끝나며, 불교적인 것은 ‘나무아미타불’로 끝난다. 전형적인 규방가사들의 끝에는 일정한 형식의 발문이 붙어 있다.

⑧ 그 체제와 보존형식도 양반가사와는 달리 두루마리 형식으로 필사하여 둥글둥글하게 말아두는 체제를 취하고 있다.

규방가사의 내용은 각양각색이나, 그 주제와 소재는 거의가 양반부녀들의 생활주변에서 얻은 것이다. 엄격한 유교적 윤리관에 입각해서 주제와 소재를 택하였기에 교훈적인 것이 원류를 이루며, 속박된 여성생활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문물제도·인심·풍속, 자연에의 관조, 가문의 기쁨, 놀이의 행락 등이 아류를 이룬다. 내용을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시집갈 또는 시집간 딸이 지켜야 할 내용을 노래한 <계녀가>·<규행가>와 같은 계녀교훈류(誡女敎訓類), ② 여자인 자신의 주변환경을 탄식한 <여탄가>·<여자탄식가>와 같은 신변탄식류, ③ 부모를 생각하고 그리는 <사친가>·<상사몽>과 같은 사친연모류, ④ 이별한 임을 생각하고 느낀 바를 노래한 <ᄉᆞ녀가>·<붕우사모가>와 같은 상사소회류(相思所懷類),

⑤ 놀이의 풍류를 노래한 <화전가>·<화수가>와 같은 풍류소영류(風流嘯咏類), ⑥ 친척·가문의 자랑을 노래한 <향원행락가 香園行樂歌>와 같은 가문세덕류(家門世德類), ⑦ 부모의 장수와 가정의 영화를 축원하고 송축한 <슈신가>·<수연연하ᄎᆞᆫ문>과 같은 축원송도류, ⑧ 죽음을 슬퍼하거나 그에 따른 제사를 묘사한 <인산가>·<노전제문>과 같은 제전애도류(祭典哀悼類),

⑨ 아름다운 곳을 보고 찬미한 <순행가 巡行歌>·<청량산가 淸凉山歌>와 같은 승지찬미류(勝地讚美類), ⑩ 은덕을 갚고자 하는 <인산가>와 같은 보은사덕류(報恩謝德類), ⑪ 인간세계를 동식물에 비유한 <화조가>·<화초가>와 같은 의인우화류, ⑫ 여행노정을 기록한 <부여노정기 扶餘路程記>와 같은 노정기행류, ⑬ 선을 권하고 신앙을 권하는 <권독가>·<혜원가>와 같은 신앙권선류,

⑭ 매달마다 계절마다 행할 농사일과 풍속을 노래한 월령계절류(月令季節類), ⑮ 노동과 그 과정을 노래한 <보촌가>·<농부가>와 같은 노동서사류, ⑯ 언어유희를 노래한 언어유희류, ⑰ 소설을 규방가사화하거나 내간을 규방가사화한 <상장가사 上狀歌辭>·<양귀비가>와 같은 소설내간류, ⑱ 한말의 개화와 계몽을 노래한 <긔교사>와 같은 개화계몽류,

⑲ 한문학을 번안하거나 역사를 노래한 <장한가 長恨歌>·<기완별록>과 같은 번안영사류(飜案咏史類), ⑳ 남자가 노래한 것을 노래한 <망실애사 亡室哀詞>와 같은 남요완상류(男謠玩賞類) 등등이다. →가사

참고문헌

『가사문학론고』(이동영, 형설출판사, 1977)
『규방가사연구』(권영철, 이우출판사, 1980)
『규방가사각론』(권영철, 형설출판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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