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내용구성은 강역(疆域)·방리(坊里)·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읍선생(邑先生)·성지(城池)·공해(公廨)·창고(倉庫)·누정(樓亭)·단묘(壇廟)·원우(院宇)·역원(驛院)·진보(鎭堡)·산천(山川)·형승(形勝)·관애(關阨)·교량(橋梁)·봉수(烽燧)·호구(戶口)·풍속(風俗)·물산(物産)·고적(古跡)·인물(人物)·성씨(姓氏)·사찰(寺刹)·한전(旱田)·수전(水田)·제언(堤堰) ·진공(進貢)·조적(糶糴)·전세(田稅)·대동(大同)·균세(均稅)·봉름(俸廩)·군병(軍兵) 등으로 되어 있다.
성지조에 1809년(순조 9) 군수 박남원(朴南源)이 처음으로 읍성을 쌓았다고 기록하면서 ‘당저(當宁)’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순조대에 작성된 읍지를 바탕으로 하여, 일부 내용만 새로 작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건치연혁조에는 1652년(효종 3) 강음현(江陰縣)과 우봉현(牛峯縣)을 합하여 금천군을 신설하였으며, 1678년(숙종 4), 1753년(영조 29), 1796년(정조 20) 등 여러번 읍의 중심지를 이전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방리조에는 면별로 위치, 호수, 남녀인구수를 기록하였으며, 대남면(大南面)과 소남면(小南面)이 1796년에 개성부로 이관되었음도 기록되어 있어 행정구역과 인구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이밖에 1871년에 편찬된 ≪해서읍지≫에 수록된 <금천군읍지>가 참고가 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